당신은 꿈을 꾸나요?
안녕하세요. 이번 관점공유를 진행한 김지혜입니다.
한번 해보았던 것이라 더 쉬울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관점공유는 이전과 같은, 혹은 더한 무게로 다가왔다. 나의 이야기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 되어야 한다 는 생각에 더 무겁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나는 ‘꿈’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했다. 꿈이라는 단어를 적고 바라보는 것, 혹은 말로 내뱉고 스 스로가 듣는 것 조차 어색하고,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어 색함을 뒤로하고, ‘당신은 꿈을 꾸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꿈이 무엇이냐가 아닌 꿈을 꾸는가라는 질문은 약간은 더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다. 마주 앉아 있지만, 고개를 옆으로 돌린 것처럼 언제나 신경이 쓰이지만,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피하고 싶은 그런 것이 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질문이 내게 힘든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엔 어른들이 내심 이런 질문을 해 주길 바랐던 순간이 있었고, 답을 할 때면 모종의 성취감까지 느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종류 의 질문들이 두려워졌고, 질문하는 이들도 이런 두려움을 아는지, ‘너는… 뭐할건데?’라는 매우 완곡하고 간 접적인 방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점점 꿈이 뭐냐는 질문은 무엇을 직업으로 삼을 건지, 진로를 어떻게 하려 는 건지, 무엇을 먹고 살 건지 등의 질문으로 바뀌어갔고, 이 변화와 함께 두려움도 커져갔다.
그렇다면 이런 두려움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꿈을 꾸는가 아닌가의 경계를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어린아이의 세상은 아직 채워지지 못한 부분이 많고, 그 채워지지 못한 부분은 꿈을 꾸는 이에게 가능성과 같다. 어린아이의 무지함은 공백이고, 이 공백이 어떤 꿈 이든 가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며 마주하는 세상에 놓여진 수많은 사실들을 알게 되며, 이 공 백은 메워지고, 꿈이란 단어가 들어설 자리는 없어지게 되는 게 아닐까
또한, 아직은 공백인 자리를 발견하더라도, 더 이상 그 공백을 가능성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아직 은 인지하지 못한 사실들로 메워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내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꿈을 꾼다’라는 행위를 부담스러워하거나, 어른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치부하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상상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 보고는 이내 누가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혹은 상상과 현실의 간극을 인지했기 때문에, 상상을 망상 이라고 결론 짓고는, 구겨버린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꿈을 꾸는 사람이 존재한다. 여전히 그 질문에 눈을 반짝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하게 된다. 그들은 어떻게 그 많은 공백들이 차오르고 상상할 여지 라는 것이 사라지는 경험 이후에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까.
어렸을 적 읽었던 고전 중에 아직도 그 묘사와 이야기가 선명하게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이다. 늙은 어부가 홀로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으려 한다. 생각보다 큰 물고기가 미 끼를 물어 기뻐하지만, 힘 좋은 물고기는 좀처럼 끌어올려지지 않는다. 미끼를 문 채 헤엄치는 물고기에 끌 려 노인은 바다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게 되고, 헤밍웨이는 이런 노인의 의지와 고통, 고민을 매우 치밀한 묘 사로 표현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노인을 모종의 전쟁상태에 놓여있게 하는 것이 물고기인 동시에, 이 노인에게 유대감과 위안을 주는 것 역시 물고기이다. 노인이 물고기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는 노인이 물고 기를 단순한 생계 유지의 수단이나, 먹거리로 대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임을 알게 한다.
이쯤에서 다시 꿈을 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스스로 문득 놀라게 된다. 꿈을 꾸냐는 질문이 나의 내 면에서 지금껏 어떤 형태로 치환되어왔는지를 깨닫기 때문이다. 당장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는 문제를 꿈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치환하지 못하는 것이 철없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일까 등등 의 질문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가 꿈을 꾸지 못하는 것에는 분명 꿈에 대한 잘못된 정의가 내면에 자리 하고 있기 때문임은 분명하다. 노인과 바다에서의 물고기는 노인에게 단순히 밥상 위의 생선이 아닌, 자신 이 투영된 모습이자, 당장에 작은 배를 움직이게 하는 무엇이다. 아마도 앞서 언급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꾼다는 사람들’은 이 노인과 같은 이들일 것이다. 그들이 철이 없어서, 여전히 현실에 대한 무지의 상 태에 놓여있어서, 혹은 낙관적이어서가 아닌, 꿈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그리고 ‘전 쟁이자 동시에 집이기도 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꿈은 꾼다는 것 자체가 매우 용기 있는 일이다. 꿈을 꿀수록 현실은 더욱 가혹하고 비 참해 보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꿈을 꾸는 것은 어쩌면 현실의 벽과 장애를 인지하지 못 하고, 자신의 결핍을 깨닫지 못한 철없고 막연한 행위가 아닌, 결핍과 장애에 대한 인지와 정면으로 마주하 는 행위일 것이다.
당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여전히 꿈을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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