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DEMA Studio eyes 노소령입니다. 오늘 저는 '웃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잠시 소개해드리고 싶은 단어가 있습니다. '짤'이라는 단어인데요, 여러분은 혹시 '짤'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짤'은 '짤림 방지'의 줄임말인 '짤방'의 약어로써, 초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 게시물에 사진을 첨부하지 않은 글을 삭제했던 규정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단어입니다. 작성자가 자신의 글이 삭제되는(짤리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게시물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사진을 첨부하는 문화가 형성되었고, 이 사진이 독립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짤'문화가 새로운 인터넷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짤'은 특정 상황에서 '말' 대신 '사진(그림)'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시각적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과 수용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을 특징으로 합니다.
↑ 짤방의 예
저는 평소에 모바일 메신저에서 대화를 하거나,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할 때 이러한 '짤'을 많이 사용하는 편입니다. 짤을 등장시키기에 적합한 상황이 발생하면 짤을 찾으러 갤러리를 켜는 일이 너무나 당연해졌습니다. 이제는 스킬도 생겨서 수십 장의 짤 중에 한번에 필요한 짤을 골라낼 수 있는 능력까지 생겼습니다. 이렇게 짤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는 저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는 이도 있곤 합니다(물론 제 짤에 열광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냥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보니 제가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들과 함께 '웃고 싶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웃음' 그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이론과 책들을 찾아보았지만 계속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멀리 돌아 결국 도착한 지점은 각각의 개인에게 웃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또 어떤 힘을 갖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약한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저의 웃음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너무나 당연한 웃음의 의미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 개죽이의 웃음은 어떤 의미일까요? 개죽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에게 웃음은 크게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다가가기'와 '거리 두기'인데요, 저는 웃음을 통해 타인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냅니다.
먼저 다가가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흐름을 알 수 없는 시간과 좌표를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태초의 인간이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바로 '불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지의 시공간에 대한 불안과 더불어 미지의 '인간'에 대한 불안도 존재했을 것인데요, 인간은 이러한 불안들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합니다.
시간에 대한 불안의 극복은 시간의 분절화 작업이 담당했습니다. 마치 눈 앞에 놓인 사과의 수를 세는 것처럼 인간은 초, 분, 시라는 단위로 시간을 세고, 더 나아가 이를 모은 일, 달, 년을 만들어냈습니다. 일과 달, 년은 각각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끝없이 반복됩니다. 반복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한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생명체에게는 죽음이라는 끝이 존재하기에 이것이 완벽하게 무한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숫자를 가진 순간이 또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시간에 대한 불안을 제거합니다.
공간에 대한 불안의 해방은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지도'는 바로 인간이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인데요,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공간을 우리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평면에 나타냄으로써, 유한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이렇게 질서의 부여를 통해 공간을 편집하는 것은 전지자가 세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 위상에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우리가 지도를 바라보는 행위 또한 전지자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행위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새로운 전지자가 된 인간은 공간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얻게 되고, 이는 공간에 대한 불안을 극복 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1]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불안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내 눈 앞에서 숨쉬고 있는 이 물체를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있지만 몸뚱이 안에 숨겨진 것(생각, 정서)들은 쉽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때 인간은 표정을 포착하려는 시도를 통해 표정 너머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지를 알아내고자 합니다. 인간의 얼굴 근육의 개수가 많은 이유도 인간이 표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미세한 근육들의 움직임으로 인간은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표정은 언어보다 즉각적이고 가끔은 더 잘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특히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수많은 표정 중에서도 '웃는' 표정은 불안을 해소하는 데에 효과적입니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표현 중에서 개인의 긍정 정서를 가장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에서 웃음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이를 함께 있는 사람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며 결과적으로 긍정적 정서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특정 상황에서 잠시나마 사람들과 함께 웃는 행위는 저에게 '이 사람과 같은 세계에 있다'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 이순간만큼은 이들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줍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는 웃음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웃음은 위계와 단절을 허물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웃음을 통한 '다가가기'가 허용되지 않는 곳은 차갑고, 메마른 공간입니다. 비단 웃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 의견, 가치관을 나누고 받아들이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거리 두기'는 어떤 이야기일까요?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꿈쩍하지 않는 무거운 돌덩이를 앞에 두고, 우리는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하나는 우는 것, 다른 하나는 웃는 것입니다.
운다는 것은 슬픔에 몰입한다는 뜻입니다.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고통과 슬픔 속으로 들어가 침잠하고 고통과 혼연일체가 되는 일입니다. 보통 문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런 식으로 대처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웃음은 조금 다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웃음을 취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에 함몰되어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문제가 되고, 문제가 내가 되는 순간,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어집니다. 따라서 문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상황을 직시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내가 아니고 나의 밖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상황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눈 앞에 놓여있는, 내 시야를 모두 가리는 커다란 돌덩이를 보며 이렇게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때 웃음이 상황을 전환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어떠한 노력에도 반응을 않는 돌덩이를 치우는 일은 기존의 방법으로는 어렵습니다. 잠시 바깥바람을 쐬고 와, 새로운 내가 되어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이때 웃는 행위는 빽빽한 생각과 고통 틈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나서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웃음은 '환기','Break Time', '시험 보다 당 떨어질 때 하나씩 주워 먹는 초콜릿'과 같은 차원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웃음의 '거리두기' 기능을 가장 잘 체감했던 순간은 저번 학기 수강신청기간이었습니다. 전날 밤을 샜던 저는 모든 것이 귀찮았던 터라 좋은 성능의 컴퓨터를 찾아가지 않고, 집에 있는 노트북으로 수강신청에 도전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제 노트북으로는 원하는 과목을 하나도 담을 수 없었습니다. 현실 앞에 좌절한 저는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습니다. 답이 없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분노로 뒤덮인 채 몇 시간이고 가만히 앉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거울을 보았더니 형용할 수 없는 몰골의 사람1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 이런 꼴을 하고 수강신청을 하니 다 튕기지...... 컴퓨터도 인간한테만 수강신청을 허용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실실 좀 웃고 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을 좀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저는 (좀 씻고 나서) 상황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리스트를 적은 후, 수강정정기간을 확인하고 학교게시판에서 정보를 얻는 등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갔습니다. 결국은 꽤 괜찮은 시간표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웃음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수강신청과 같이 '삶의 고통'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일에 있어서도,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아주 사소한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작은 일에도 쉽게 무기력해지고, 우울로 빠져드는 저에게 '웃음으로 거리 두는'는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수강신청사건을 계기로 저는 힘든 상황에 맞닥뜨리면 의식적으로 웃을만한 거리를 찾곤 합니다. 작은 웃음이 선물하는 쉼표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에게 웃음은 '다가가기', '거리두기'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로도 너무나 소중한 행위입니다. 이는 지난 겨울 제가 '안면신경마비'를 겪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이 병은 안면 신경을 연결하는 부위에 염증이 생겨 한쪽 얼굴의 근육이 완전히 마비되는 질환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마에 주름을 만드는 것, 눈을 감는 것, 입을 제대로 다무는 것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혀의 반이 마비가 되어서 맛을 느낄 수 없었고, 귀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하루 종일 저를 괴롭혔습니다. 모든 감각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방안에서 문을 잠그고 세상과 단절된 채 춥고 어두운 스물한 살의 겨울을 보냈습니다.
눈이 따가운 것, 입안이 마르는 것,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웃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을 순간에도 미소 지을 수 없었습니다. 웃으려 애를 써도, 거울 속에는 일그러진 반쪽 얼굴만이 저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을 표정으로 담아낼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움직이지 않던 오른쪽 입 꼬리를 많이도 원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당시 '환히 웃고 싶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원래 잘 웃는 편이기도 했지만,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그 간절함이 더욱 커졌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웃을 수 없다'는 사실이 '행복할 수 없다'라는 명제와 같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다시 신경이 돌아온다면, 다시 웃을 수 있다면 정말 많이 웃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조금씩 감각이 돌아와 신체적으로는 많이 회복 되었지만 지난 겨울의 기억 때문인지, 돌아올 겨울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악몽을 꾸는 횟수가 늘어갔고 심지어 겨울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겨울이 물러가는 시점인 지금, 저는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 계절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디마와 함께 저에게로 왔습니다. 이곳은 저를 웃게 하고, 저의 웃음을 긍정해주고, 저에게 더 환한 웃음을 향해 나아가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곳입니다. 저의 짤 욕심도 이곳에서는 손가락질 당하지 않습니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애라고 손가락질 하지도 않습니다. 밖에서는 숨겨야만 했던 상처를, 생각을, 저를 이 곳에서는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진짜 저'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선 느낌이 듭니다.
그토록 바래왔던 웃음이기에 지난 일년 동안 어떻게든 많이 웃으려 했습니다. 웃음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억지로 웃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정말 나를 웃게 만드는 것들에 집중하고 그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으로써의 '웃음'을 찾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웃음이 무어라 말 걸고 있나요?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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