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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s/DEMA Talks

경계와 틈이 있는 삶에 관하여

EYES 한주연입니다. 이번 관점공유에서 저는 D.E.M.A.‘A’nthropology, 인류학에서 시작해 삶의 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산다는 것은 타인이 되는 일이다.”

<불안의 책> - 페르난두 페소아

 

딴 사람 ㅡ 참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입을 맞춘다.”

 <생활의 극복>, 김수영



0. 문화인류학?


인류학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 이런 이미지를 상상하고 계시지 않나요? 인류학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또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고고학이나 체질인류학(진화론, 생물학, 유전학 등을 바탕으로 인류의 생물학적 특성에 관해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만 좁게 이해하는 학문인데요. 사실 인류학은 문화인류학, 사회인류학, 체질인류학 등의 분야로 나누어지며, 서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꽤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문화인류학비교적 최근에 생긴 분야로, 단일 지역의 문화를 연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역•국가•초국가를 아우르는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학문입니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영향 등으로 복잡해진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패턴 찾기를 시도하는 것이죠. 그래서 문화인류학은 다시 정치인류학, 경제인류학, 예술인류학, 법인류학, 의료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며 각각의 분야에서 그와 관련한 인간의 상호작용과 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인류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조사방법들은 주로 인터뷰, 현지조사, 사례연구, 서베이(설문조사), 맵핑mapping, 인구센서스 등 통계적 자료의 사용, 시간적 깊이를 제공해주는 역사적 자료와 공문서의 사용 등 매우 다양합니다. 세상과 인간이라는 깊고 넓은 주제에 더해, 그것을 심도깊게 이해, 분석하고 공감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방법론적 스펙트럼이 넓은 편인데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한 사람의 생애사를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는 인터뷰, 그리고 특정한 지역이나 커뮤니티로 들어가 현지조사를 하는 두 가지 방법론이 가장 주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인류학은 조사결과 그 자체 뿐 아니라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방법론을 실행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성찰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특히 이러한 질적 조사방법이 특정 개인, 특정 지역과 연구자가 직접 만나 관계를 맺으며 조사가 이루어지는 학문이기 때문에 현지로 들어갔을 때, 혹은 인터뷰를 할 때 요구되는 두 가지 사이에서 인류학자는 많은 고민을 겪게 됩니다. 대상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연구자 스스로 필드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거나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감정이입을 필요로 하는데, 동시에 인류학자로서 연구대상과의 거리두기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1.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늘 곱씹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인류학이 선택한 저러한 조사방법이,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기는 인류학자의 고민들이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한 개인의 생애사, 한 지역의 이야기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그러한 조사를 수행하는 연구자의 감정, 관계, 통찰을 믿으려는 것.  이처럼 인간과 인간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믿음은 문화인류학 연구자와 연구대상 모두에게 평등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2. 우리의 같음과 다름을 어떻게볼 것인가

 

결국 저에게 문화인류학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인간과 그 세계를 둘러싼 수많은 같음과 다름, 보편성과 다양성을 파악하는 학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이 같음과 다름 자체도 물론 중요한 연구대상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차이들을 어떻게바라볼 것인지도 문화인류학에서는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위의 솔방울들은 모두 같은솔방울이지만 모양은 제각기 다릅니다. 여기서 각각의 모양이 가진 개성들을 볼 수도 있고, 혹은 솔방울이라는 공통점을 먼저 볼 수도 있겠죠. 각각이 가진 차이들로 이들을 분리해야 하는지 혹은 공통점으로 연결을 먼저 할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하게 됩니다. 만약 이 솔방울들을 각각의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저는 여성이고, ‘대학생이고, ‘이고, ‘20라는 다양한 특징으로 구성된 다면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특징들이 얽혀 저라는 특수한 존재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각각의 특징들로 이어질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장애를 가진 20대 여성을 만났을 때 내가 장애의 여부를 차이로 인식할 뿐 아니라 20대나 여성이라는 점을 또한 큰 공통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공통점에서 시작해 나와 전혀 다른 존재, 이질적인 타자라고 여겨온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3. ‘시선의 문제



  즉 이러한 자기 위치에 대한 성찰, 그리고 그것을 소통가능성으로 이어내는 것이 문화인류학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와 나를 둘러싼 세계간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 대한 앎과 세계에 대한 앎은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둘의 경계에서 문화인류학은 이 간극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시선의 문제는 결국 다시 같음과 다름의 문제, 그리고 그것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와 타인들이 사실은 비슷비슷한 것들을 느끼며 살아가며 그래서 공감 가능하다는 것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자가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세계에 서 있다는 사실에 대한 대면, 어쩌면 부정적일 수 있는 이러한 세계 인식이 또 다른 하나가 되겠지요.




진정한 삶은 여기에 부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안에 있다. 이런 알리바이 속에서 형이상학은 생겨나고 유지된다.”

임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전체성과 무한(1961)』의 첫 문장.



 

4. 시간의 틈



      이러한 경계사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이라는 것은 위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틈에는 시간의 틈•공간의 틈• 소리의 틈•관계의 틈 등 다양한 틈들이 있겠죠. 그 중에서도 무엇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뜻하는 시간의 틈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1) 시간의 모양

 

  시간의 모양은 직선일까요 원형일까요? 이 질문은 시간이 단선적으로 흐르는 것인지 순환적으로 흐르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는 원래 별의 운행을 의미했는데요. 역사적 의미로 차용되면서 한정된 수의 지배형태들이 순환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발전, 혁명이라는 것이 어떤 일직선적인 형태로 계속해서 나아가는것을 뜻하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죠.

 

  2) 신의 시간, 인간의 시간

 

  시간이 신의 것이었을 때 시간은 안정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신화를 읽을 때 느끼듯 그 안의 모든 사소한 배경과 각 신들의 특징 및 행동들은 모두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화적 세계는 의미로 가득 찬 세계입니다. 또한 그러한 각각의 의미들은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다기 보다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이야기에 개연성을 부여합니다. 사물과 사건간에 연관성을 부여할 때 의미라는 것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신의 세계는 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연결들이 모이면 세계의 질서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리고 질서가 있는 세계는 안정성을 가지며 흘러가죠.

 

  그러나 시간이 인간의 몫으로 넘어가면서 시간은 제작 가능한 어떤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간극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시간의 은 사라져야 하는 어떤 것이 되고, 그래서 시간이라는 것은 질서와 안정성을 잃게 됩니다. 인류의 역사에 이 틈의 제거를 시도하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요, 특히 증기기관차의 발명은 시간과 함께 달리며 시간을 장악하려 했던 가장 대표적인 시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수많은 기술들이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 더 빠르게 도달하려는 목표 아래 개발되고 있지요. 이런 과정에서 으로 순환하며 이어지고 질서가 부여되던 삶의 시간은 점차 개개의 으로 대상화, 파편화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선이 아닌 점이 된 인간의 삶, 그리고 그 삶이 흐르던 시간은 이내 속도전이 되어 내달리게 됩니다. 삶에 어떤 드라마적인 점을 찍어야 한다는 불안, 점과 점 사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강박이 시간적 불안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행동이라는 것이 절대화 되는 것이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기 전에 이미 내달리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해지는 삶의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행동주의가 강박적으로 일어날 때 우리의 불안이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깊은 권태가 생겨납니다.

 

깊은 권태의 원인은 행위의 결단에 완전히 장악 당한 삶에 있다.

깊은 권태는 과다한 활동성, 어떤 형태의 사색도 알지 못하는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이면이다.’

 

 


5. 삶과 일상

 

그래서 우리의 생활은 어떨까요? ‘이 아닌 일상을 들여다봅시다. 삶이 드라마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아래 일상은 파괴되기 쉬워집니다. 먹는 것, 자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 누군가를 만나 소통하는 것 등은 인간이 아주 오래 전부터 해 온 아주 자연스러운 일들이지요. 그런데 이 일상적 행위들이야말로 우리의 총체적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러한 일상들을 지키기 어려운 곳이 된 것 같습니다. 삶의 목표와 이루어야 할 꿈에 대해 묻는 동안, 그 목표를 향해 내달리지 못하고 머뭇대는 행위는 언젠가부터 바보 같고 멍청한 행위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하지만 과거에 인간은 머뭇대는 시간을 망설이며 수줍어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했으며,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지나온 시간을 제대로 돌아보며 더 제대로나아가기 위한 방향조정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시간은 나의 주변과 타자를 돌아 볼 수 있게 합니다. 내가 이루어야 할 삶, 내가 찍어야 하는 점만을 위해 내달릴 때 타인은커녕 자신을 돌아볼 틈을 갖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지요. 따라서 점과 점 사이에 틈을 가지는 것이 위에서 이야기 한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시간이 아닐까요?

 



6. 문화인류학, 그리고 시간의 틈사이에서

 

작년에 어떤 신문의 칼럼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마저도 고뇌가 아니라 결단이 된 시대라는 문구를 읽고 깊이 공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삶에 대한 깊은 고민마저도 어떤 행동, 빠르게 결정해내야 하는 것이 된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 멀리 있거나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내달리는 삶에 지쳐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불안하고 행복하지 않다는 소리들이 주변에서 많이 들리는 듯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점이 아닌 선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 doing보다 being을 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삶의 시간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시간의 이 갖는 무한한 힘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렇게 일상을 지켜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연히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드디어 이야기하고 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에 서서 그 틈을 보려는 문화인류학과 삶의 접점은 그래서 이 이라는 말로 정리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에서 조금은 벗어나 타인을 돌아보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좀 더 넓히며 살아가는 삶, 문화인류학과 시간의 틈을 이렇게 연결시켜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삶이 명확하게 찍은 점들이 아니라 선을 그어가며 그만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처럼, 문화인류학도 나와 타자라는 각각의 점을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경계 사이를 넘나들며 더 공감하고 더 이해하고 더 소통하며 간극을 메우려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약간 흔들리더라도 더디게 가는 삶 안에서 더 다양한 색으로 점과 점 사이 선들을 긋고 마음껏 색칠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참고-

<시간의 향기 Duft der Zeit> 한병철, 문학과 지성사




*본 컨텐츠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구성되었으며, DEMA Studio의 성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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