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디마 스튜디오 아이즈 최준원입니다.
여러분의 지금은 행복하신가요? 혹시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힘든 상황 때문에 불행한 순간들을 보내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TV 혹은 책을 통해 행복을 전하는 유명 연사들이나 물을 법한 다소 눅눅한 질문으로 디마 토크를 시작해 보았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하려는 내용도 여러분의 행복 안부를 묻는 위 질문들과 일맥상통할 것 같은데요. 삶을 살아가면서 닥쳐오는 불행의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을 통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저만의 방법을 소개하고 공유해보려 합니다.
행복하게 산다.
이야기를 준비하며, 먼저 과거의 제 모습들에게 '무슨 생각하면서 살아?'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엔 어떻게 하면 어른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을까, 중, 고등학교 시절엔 어떻게 하면 멋있어 보일까, 또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군복무 중엔 단연 전역에 대한 열망이 가장 컸었고, 전역 후부터 지금까지는 앞으로 무얼 해먹고 살지 고민해왔습니다. 돌이켜보면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생각들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시점의 저에게 '왜 살아?'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항상 '행복하기 위해 살아'였을 것입니다. 나이를 먹어가고 고민의 주제가 달라져도 저는 행복하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누군가는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다른 누군가는 평생 그 해답을, 즉 삶의 목적을 찾아가며 살아가기도 하겠지만, 저는 행복하기 위해 먹고, 행복하기 위해 자고, 행복하기 위해 합니다. 굳이 그 질문에 대한 수 많은 고뇌와 깊은 사색의 시간을 거치지 않더라도 저의 결론은 그러 할 것입니다. 그만큼 행복이란 것은 간단명료하면서도 매우 본질적인 명제로써 저에게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 입니다. 행복을 경험하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이 행복함을 경험하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을 통해야 합니다. 행복한 상황을 경험하거나, 혹은 불행한 상황을 경험하지 않거나.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바로 후자, 즉 불행한 상황을 경험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은?
작년 여름 쓰게 되었던 한 자소서 속 질문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에 대한 물음에 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행복하고 평탄한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그래서 처절한 실패에서 오는 불행함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또, 행복과 불행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 남이 보기엔 아주 작은 시련임에도 본인에겐 커다랗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에서, 불행한 순간이란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저 역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왔습니다. 학창시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했던 기억들, 원하던 대학교로의 진학 실패 등등.. 좌절감과 불행은 남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결국 자소서 속 빈칸을 위와 같은 실패의 내용들로 채우지 못했습니다.
차선을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믿고, 그렇게 기억하는 것
그 이유는 바로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한 것처럼, 세상에 불행한 상황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불행의 상황을 '내가 꼭 겪었어야 할 최선의 상황'으로 정의하고 그렇게 만들어 낸다면, 결국엔 불행이 불행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들었던 저의 예를 다시 가져와보고 싶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철없던 방황은 저로 하여금 '나는 놀고 싶은 만큼 놀아봤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지니게 했고, 고등학교 진학 후, 보다 높은 집중도의 입시 준비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또, 원하는 대학교로의 입학 실패는 여타 다양한 전공들의 수준이 우수한 성균관대학교로의 진학을 가능하게 했고, 그 다양한 전공들을 공부할 수 있는 열린 기회 덕분에 '다학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현재 저의 삶의 매우 큰 부분이 되어주는 DEMA로까지 저를 이어주었습니다.
이처럼 불행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시련, 즉 '차선의 상황'이 닥쳐오면 그 상황이 자신에게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게끔 '개인의 노력'을 투입하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 방법론의 핵심입니다. 결국 불행하다고 믿었던 상황은 어느새 자신을 더 발전시켜낸 선택이 되는 것인데요. 이것은 '개인의 노력'이 적극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자세로써의 만족과는 그 가치와 과정에서 매우 다른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천적인 장애 때문에 사지가 없이 자란 닉 부이치치 역시 저와 같은 방식의 사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8살의 나이에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로 누가 보아도 불행한 삶을 업고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 합니다. 실제 강연에서도 자신의 불온전한 신체를 내던져서 넘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청중들에게 보여주며 행복에 대해 그 어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역설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 즉 온전치 못한 신체를 자신의 삶 속 최선의 상황으로 인식하고 노력하여 최고의 행복 전도사가 된 그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평범한 신체조건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 했을 만한 가치를 전하며 삽니다. 아마도 닉은 자신의 상황을 진실로 전혀 불행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닉 부이치치와 저처럼 노력의 시간을 거쳐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 후, 완벽한 불행의 행복으로의 탈바꿈을 위해 추가적으로 거쳐야 할 공정들이 몇 가지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 것을 '믿고,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불행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낸 최선의 것을 '진실로 그러하다'고 믿으며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그러했다'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미련을 남겨둔다면, '과연 내 삶이 더 나아진 것일까?'라는 불행한 생각의 씨앗이 언제 마음속에 다시 싹틀지 모르는 법이기 때문에, 이 두 과정은 완벽한 하나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행복으로의 초대
종종 TV에 나오는 불우이웃이나 소년 소녀 가장의 이야기들을 접할 때,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저런 사람들도 있는데, 너는 얼마나 행복한 인생을 사는 거니? 만족하고 행복한줄 알아라". 불행의 이유를 제쳐놓고,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이 정해놓은 행복함의 잣대를 들이밀며 '너는 행복해야 마땅해', '만족해야 마땅해'라고 강요하는 것은 꽤나 폭력적인 발언일 수 있습니다. 진실로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란다면 이제는 "너에게 주어진 지금의 상황이, 너에게 최선의 상황이 될 수 있도록 같이 힘내보자!"라고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시나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불행의 터널 속을 걷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그렇다면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그 불행을 바라보려 노력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엄청나게 위대하고 특별한 방법은 아니지만 소소한 발상의 전환을 담은 저의 이야기가 일상의 좌절로 슬픔을 겪는 분들에게 작은 변화의 계기를 줄 수 있다면, 아마도 이번 관점공유는 저에게 더더욱 뜻 깊게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하철 역 앞에서 받았던 한 종교 홍보물의 첫 문구처럼, 이 글이 누군가에게 행복으로의 초대가 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본 컨텐츠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구성되었으며, DEMA Studio의 성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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