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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s/DEMA Talks

학교에 왜 다니나요? - 이수헌

안녕하세요, DEMA Studio Hands 이수헌입니다. 최근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넌 학교에 왜 다녀?초등학교 6, 중학교 3, 그리고 고등학교 3년에 이어, 현재 저는 대학생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저를 소개할 때면, ‘대학생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저는 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학생이라는 신분을 항상 포함시킵니다. 그런데 왜 학교에 다니냐는 질문에는 즉각적이고 명쾌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을까요? 주변 친구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답변은 그냥, 다들 다니니까’, ‘취직해야 되니까이었습니다. 대부분 제 주위 친구들은 사회적 분위기나 미래의 돈벌이를 위해 별 다른 생각 없이 남들 따라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대학이라는 공간이 취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타인에 의해 반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는 맹목적인 공간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시선, 가족의 기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존재였기에, 제 질문은 학교에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배우고 싶은 것을 무엇일까?”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세상을 날카롭게 직시하기 위한 시각을 혹은 힘을 얻기 위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 ‘Dema Talks’에서도 말씀 드렸듯 저는 시대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을 꿰뚫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침묵에 의한 비인간화다원화의 가치를 잃는 문제등을 방지하기 위해서기 때문이죠. 그리고 저는 이러한 시선 혹은 시각을 문화인류학이라는 전공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기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학교에 다니는 이유를 인류학적 표현을 빌려 풀어서 설명하자면, ‘즐기고 안착하고 싶은 경계 안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제가 학교에서 새롭게 얻게 된 관점에 대해 몇 가지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질적 연구를 한다는 것에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수치화할 수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떤 주장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양적 연구가 아닌 질적 연구를 실제로 행해보면서 편협했던 제 시각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느낌, 감정, 직관, 믿음 혹은 관념 등은 우리의 일상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면서 인간 행위의 강력한 요인이지만 수치화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과학에서 대체로 인간과 사회를 개체로서 객관화하는 데에 사용되는 수치, 즉 양적 자료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인식됩니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실증주의에 기반한 사회과학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양적 연구방법이 다룰 수 없는 인간세계의 현상들을 다루는 질적 연구방법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질적 연구방법을 주로 행하는 인류학자라도, 질적 연구방법이 양적 연구방법을 대체하는 대안적 연구 방법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인류학자 윤택림은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방법이라기보다는 어떤 연구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의식이다.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연구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를 정하고, 그 연구 주제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연장도구를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양적이건, 질적이건 연구 주제를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연구방법을 선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외에도 정신과 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몸은 정신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시각, 획일적인 미의 기준 등 몸에 대한 논의를 통해 새로운 접근법을 배우기도 하고, 정상과 비정상, 혹은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 그리고 그에 따른 차별적 시선에 대해 배우면서 분류에 대한 성찰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제 관점에 변화를 주거나 시각을 넓혀준 배움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제게 영감을 주는 것은 시대의 감수성을 읽는 시선입니다.





위 인용문은 책 <셀 위 토크>에 나오는 김혜남 교수의 인터뷰 중 일부입니다. 경쟁사회에서 개인은 살아남기 위에 옆을 돌아볼 여유를 갖기 힘들며, 남들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자신이 뒤쳐지고 있지는 않은지 불안에 떱니다. 성공하고 최고가 되지 않으면 실패라는 평가, 그리고 그에 따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스스로를 더욱 움츠리게 만듭니다. 부딪쳐보고 돌아가기보다는, 주어진 길에 따라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할 뿐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은 어떨까요? 언제부터 학교가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걸까요? 글 시작에서 질문을 던졌듯 왜 우리는 목표의식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있을까요? 위 책 <셀 위 토크>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수이기도 한 조한혜정 교수는 엘리트 학교가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엘리트 학교가 아니라 시장에서 성공하는 엘리트를 만드는 식이라며 현 학교의 역할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었습니다.




문화인류학과 특성상 저는 전공 수업 중 팀 단위의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도 하였는데요. 위 사진은 제가 1학년 때, 송도에 위치한 국제캠퍼스에서 동기들과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담고 있습니다. Creative Commons, 창조적 공유지라는 이름으로 저희는 국제캠퍼스에 새로운 문화공간을 구축하고자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큰 변화를 꾀했던 것이 아니라, 국제캠퍼스에서 생활하는 새내기들에게 필요한 문화 및 공간을 만들고자, 과일 판매를 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체감하는 국제캠퍼스의 문제를 수렴하기도 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저희의 생각을 표현/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즉 학생들의 생활에 자연스레 스며들면서 함께 노닥거릴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죠.




제가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면서 들었던 많은 고민들 중에 한 가지를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공감과 이해, 호혜성등을 추구하는 문화인류학 수업을 듣다 보면, ‘성장이냐, 분배이냐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에도 나왔듯 문제는 어떤 성장이며 분배이냐인 것 같습니다. 이분법적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두 요소가 지닌 강점이나 놓치고 있는 문제를 고려하면서, ‘어떤성장과 분배를 도모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경쟁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경쟁 후, 발생하는 차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이처럼 직선의 성장이 갖는 한계는 무엇인지, 맹목적인 분배가 갖는 한계는 무엇인지 고민을 하다 보면, 어떠한 방향의 성장을, 그리고 분배를 추구해야 할까 서서히 답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문화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문제와 애써 외면하는 문제를 직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런 힘을 기르기 위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학교에 왜 다시시나요? 그리고 무엇을 얻어가고 있으신가요?

 

책 윤택림, «질적 연구 방법론», 지승호, «쉘 위 토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