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DEMA Studio Eyes 이수헌입니다. 저는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제 꿈, 가치관, 전공 등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데요. 그에 앞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인 <한공주>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볼까 합니다. 저는 영화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특히나 제가 좋아하는 영화는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들입니다. 칙칙한 분위기와 함께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영화를 주로 찾아보는데요. 그런 영화를 보면 마음 한 켠이 찜찜하고 불편하다고 주위에 꺼리는 친구나 가족들이 꽤 있는데, 저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해 일부러 어두운 영화를 찾아 다닙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고 본격적으로 제 관점공유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작년 전공 수업 시간 중 제 뇌리를 강하게 스쳤던 질문을 통해 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사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는데, 여기서 서사는 네러티브(narrative)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질문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당시 수업내용을 되돌아보면,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존 듀이(John Dewey)’는 삶의 필연으로서의 교육을 이야기합니다. ‘필요성’보다는 ‘필연성’의 개념에서 교육을 설명하는데요. 따라서 그에게 삶은 곧 교육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육은 갱신을 의미합니다. 즉, 삶=교육=‘성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존 듀이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풋(input)보다 아웃풋(output)이 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있는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은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그런데 성장을 하는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경험과 경험 사이에 단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갱신에 의한 연속성’이 존재해야 합니다. 하나의 경험이 다른 경험에 영향을 주며, 이러한 과정이 분절적이지 않고 연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존 듀이의 과점에서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갱신에 의한 연속성’이 중요한 요소인 것이죠.
그렇다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질문 속 ‘서사적’이라는 말은 기승전결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받은 저는 ‘내 삶은 어떠한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이어 대학교의 교육(혹은 공부)을 떠올려보자, 경험과 경험은 단절적이었고, ‘아 내가 에피소드적인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연속성이 깨져버린 에피소드적 삶이라는 생각이 들자 고민은 실의로 바뀌며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가치관과 꿈은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항상 던지고 있었고, 경험이 쌓일수록 그 답은 갱신되고 그에 따라 저 또한 성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라는 꿈을 계속 꿔왔고, 영화 <도가니>를 보고 제 꿈은 확고해졌습니다. 영화 <도가니>는 한 ‘기사’를 토대로 공지영 작가가 책을 출판했고, 책이 흥행하자 이를 각색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저는 영화, 그리고 영화 탄생의 시초를 제공한 기사의 영향력을 느꼈습니다. 사회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의 힘이 제게는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도가니>를 계기로 저는 최근까지도 사회의 문제를 담고 있는 영화를 ‘굳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상업영화관에서는 접하기 힘든 영화를 주로 찾아보기 때문에 독립영화관에 가고, 영화제에 가기도 합니다.
기자라는 꿈을 키워왔기에 대학 입학 후 망설임 없이 들어간 곳도 학내 방송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는 기자라는 꿈을 꿔왔을까요?’ 이는 앞서 간략하게 설명 드리긴 했지만, ‘사회 외각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포착하고 그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고자 하는’ 제 가치관에 의한 것이고, 이 가치관은 나름의 네러티브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제 가치관을 실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제가 최근 흥미를 갖게 된 분야는 ‘공공인류학’입니다. 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배우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문화현상을 포착하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학문적인 것을 넘어서 실행적인 것을 도모하는 인류학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공공인류학입니다. 현실에서의 기자와 제가 꿈꿔온 기자 간의 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 나의 가치관을 온전히 실현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찾게 된 것이 ‘나눔 디자인, 공공 디자인’이었고, DEMA 또한 그 연장선 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업-디자이너-인류학자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활동에 꽂혀있던 제게 프로젝트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공인류학은 또 다른 지평선을 열어준 것입니다.
기자, 나눔/공공 디자인, 공공인류학, 협업 활동은 모두 제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끔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은 자주 무산되고는 합니다. 이와 관련된 기사를 하나 보았는데, 그 기사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의 그러한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믿음이 강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그러한 믿음을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희생자가 그러한 일을 당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는 것이죠.”
위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이 높을수록 사회는 위험해질지 모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잘못 판단하고, 정의의 편에 섰다고 생각하면서 불의의 손을 들어주고 있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저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세상은 ‘정의롭지 않다’는 인식을 통해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저는 ’정의롭지 않은 정의로운 삶’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에 바탕하여 ‘이 시대의 감수성’에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현재 젊은이들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사회에 놓여있으며, 이기적인 세대로 불립니다. 안정감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현 젊은이들은 위험과 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포감과 함께 속물성이 진행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두려움이 가져오는 이기주의’인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가 어떻게 ‘내면화’하고 있냐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내면화의 문제’에 고민해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각이 있어야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때문이죠. 또한 내면화와 정당화는 다른 문제입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이기주의가 생존의 문제로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과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릅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이며, 또 내면화된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우리는 비인간화를 초래합니다. 중산층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폭력적 사회에 대해 묵인하는 것이 문제이며, 우리는 ‘사회의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지’를 떠나 ‘그들은 해지지 말아야지’를 논의해야 합니다. 나 살기도 바쁘고 힘든 사회에서 왜 무기력하면 안 될까요.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믿음처럼 묵인을 통해 저질러지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현상에 대해 주목해야 할까요. 저는 관점공유 자리를 빌어, ‘돈’에 의해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것, ‘돈’이 ‘돈’이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관점공유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가난은 불행하고 힘든 경험이지만, 수치스러운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자녀가 가난하다고 학급에서 무시를 받는다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나 또한 누군가를 누르고 올라가 경제력, 혹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일까요. ‘사랑이냐, 돈이냐’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돈과 사랑이 비교되는 시대에 우리는 자본주의의 치명적 유혹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나를 이루고 있는 윤택함을 무엇일까요?’
정말로 제가 좋아하는 책의 글귀를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며 여러분도 앞서 말한 문제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놓치고 있는 문제를 짚고 침묵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 짓고 차별하는 사회, 위계적이고 획일적인 스펙으로 개인을 판단하는 사회. 쌍꺼풀이 없지만 넌 예뻐가 아니라 쌍꺼풀이 없다는 것을 잊어야 합니다. 다원화의 가치를 잃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말이죠. 시대에 의한 것이지만, 그것을 꿰뚫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우리를 지켜야 합니다. 사람을 볼 때 스펙이 아닌 다른 것도 볼 수 있는, 돈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하나라도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불편한 영화를 즐겨보고,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기자라는 꿈을 키우고, 공공성을 논하고자 하는, 이것이 제 삶의 내러티브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고민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내러티브는 무엇인가요?
ps. 수업을 통해 저한테 많은 영감을 주신 문화인류학과 엄기호, 장호진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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