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디마 스튜디오 Eyes 박세원입니다. 관점공유의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요즘 느낀, 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누구에게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때가 있죠. 저에게도 얼마 전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가 잘 안풀렸고, 4학년이라는 압박감도 있었고, 가족들과의 갈등까지 겹쳤습니다.
모든 원인은 제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존감은 극도로 낮아졌습니다.
저는 그렇게 낮은 자존감 속에서, 어떻게든 나 스스로의 단점,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들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잘 되지 않으면 다시 좌절하고, 다시 노력하고, 다시 좌절하는 것이 반복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은 시기는 살면서 이따금씩 찾아오기 마련인데, 저는 당시 유달리 그 시기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생각을 해 보니,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지금 살고있는 집에 살았습니다. 초, 중, 고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기숙사, 하숙 등 집 밖에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가 살기’의 정점인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서, 그때부터 쭉 집에서 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 대학생활은 제가 가장 많이 성장하고 많은 변화를 겪은 시기입니다. 그 시기를 집이 아닌 다른 공간적 배경에서 보내다가, 다시 집이라는 과거의 공간으로 돌아오니, 집, 그리고 제 방이 과거의 기억의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제 공간적 배경이 다시 집으로 바뀌면서,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어린시절과 과거의 나, 그리고 떨어져 지내느라 생각할 틈이 없었던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해, 의도치 않게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존감이 낮은 시기가 찾아오자,
저의 단점들이 가벼운 단점들이 아니라, 저의 근본적인 부분, 이를테면 어린시절이나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도 싫어하는 내 모습이 부모님이나 언니에게서 보이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문제가 나와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나의 모습이 매우 뿌리깊은 것이어서,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이런 나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달라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살다보면 이 관계에서 한 실수를 저 관계에서도, 다른 관계에서도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요? 그냥 이게 내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었던 드라마가 있는데요,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입니다.
<괜.사>는 정신과 의사들과 정신 질환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인물들이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등장인물들이 ‘장애’를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해수는 어렸을때 엄마의 불륜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사랑이나 스킨쉽이 나쁜 것이라고 각인되어, 성인이 되었는데도 남자랑 잠자리를 하지 못하는 관계기피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열은 강박증과 조현병-소위 말하는 정신분열증, 어렸을 때 의붓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강박증이 생겨서 침대에서 자지 못하고 화장실에서만 잠을 자고, 어린시절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강우’라는 환시(幻視)를 봅니다. 수광이는 투렛증후군, 소녀는 품행장애, 등등.
하지만 이들은 일반인과 다르게 우울하게 혹은 고립되어서 지낸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그런 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입니다.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합니다.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을 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그런 병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같이 극복해가려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은 자신의 장애 때문에 연인과 사이가 안 좋아지기도 하고, 큰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물들이 마치 애증관계의 오래된 연인을 대하듯이,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극복하려 노력해가면서 자신의 장애와 관계를 유지해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에 나오는 장애들이, 제가 가지고 있는 저의 단점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제 모습들은, 우리가 부모님을 닮듯이, 선천적인, 유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어릴적 성장 환경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고, 살면서 겪게 된 사건에 대한 영향으로 형성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요. 이러한 내 모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장애가 발생하는 과정과 닮아있습니다.
또, 우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나의 단점에 대해서는 내가 왜 그런 특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고. 그러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의 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즉 단점을 극복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역시, 장애를 가진 이들이 질환의 증상을 파악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 인물들에 대해 애정이 생겼는데, 그것은 그들이 나와는 다른 특수한 경우의 사람이 아니라, 내 모습,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되면서, 저는 제 단점들과 사이좋게 지내야겠다는, 제 자신을 좀 봐줄 필요가 있다는 다짐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괜.사>의 인물들이 그러듯이, 응, 내가 그런 단점이 있지. 하고 인정하고, 천천히 극복하려고 노력해가는 것입니다. 한번에 잘 되지 않더라도요.
사실 사람이 완전히 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 역시 <괜.사>에서 재열이 가졌던 조현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인 환시를 보게 되죠. 존은 직업도 잃고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거치지만 사랑하는 부인의 도움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존 내쉬가 끝내 그 환시들을 완전히 다 극복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Are they gone?"
"No, They're not gone. Maybe they never will be."
존은 환시를 실제라고 믿던 단계에서, 환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지만 환시들이 자신에게 자꾸만 생생하게 다가와 자신을 괴롭히는 단계를 거쳐, 환시가 보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단계에 다다릅니다. 그는 여전히 환시를 보고, 그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환시가 보이면, 음 내가 환시가 보이는구나. 그렇지만 저것들은 진짜가 아니지, 무시해야겠다. 하고 지내는 거죠.
"They're my past. Everyone is haunted by their past."
그것들은 나의 과거다. 사람들은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살 수는 있죠. 계속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저는 이러한 태도가 자신의 장애, 또는 단점과의 관계에서, 적절히 타협을 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하는 건 어려우니 타협해라, 라는 말이 아니라, 완벽하지 못해도 같이 가는거죠. 존처럼 환시를 못 본척 반쯤 눈을 감고 지내는 것도 사이 좋게 극복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모습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너무 엄격하면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 오드리 헵번이 한 말로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완전히 고쳐지지 않는 단점들은 몇개쯤 있어도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좀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때, 자신의 단점과, 나아가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요즘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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