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ssions/DEMA Talks

창조의 근원

 안녕하세요! 디마스튜디오 HANDS 이소현입니다. 디마스튜디오와 함께 한지 벌써 11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돌이켜보니 올해 저에게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성격을 가진 활동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참 많이 웃기도, 울기도 했죠. 이런 시간들 끝에 서 있는 제가, 불과 1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로써의 자신감이 부족해, 디자인 기획 혹은 디자인 경영으로 길을 우회했던 저는 어느새 디자이너로의 확고한 꿈이 생겼으며, ‘편리함’과 ‘재미’ 등을 작업물의 최종 가치라 믿던 제가 훨씬 더 깊이 있는 내용들을 디자인에 담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별난 사람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창업, 문화 행사 기획 및 실현, 길거리 예술 등은 어느새 저랑 굉장히 어울리는 단어들이 되어 있었고, 없는 능력과 이야기를 멋진 말로 꾸며내기 바빴던 저의 자기소개서는 이제 꾸밈없는 진실된 모습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제 자신이 누구인지, 제가 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만들어지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은 다름 아닌 DEMA의 활동이었습니다. 사실상 DEMA에서 하는 일들은, 제가 다른 집단에서 하고 있는 일들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학제 간의 자유로운 소통과 협업을 실천하고, 세상의 더 나은 가치를 꿈꾸며, 혁신에 대해 논하는 이 집단의 수식어들은 사실 다른 곳들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그 어떤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방식을 택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저의 변화를 만들어 낼 만큼 강렬했습니다.

 이러한 저의 변화가 저만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어린 디자이너들에게 확신과 영감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DEMA의 환경과 마인드셋을 통해, 창조적인 환경의 근본적인 조건에 대해 논하고, 다른 환경에의 적용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실험할 수 있는 자유, 인정, 그리고 자신감



<너도 할 수 있어>

 DEMA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저의 친한 학교 친구가 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강의실에서만 서로를 수동적으로 접하다가, 능동적으로 나가서 Design Thinking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다른 회장들과 함께 기획한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소한 교수님은 되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야기를 하고, 어른들이 제공해주리라 믿었던 프로젝트 틀을 만들어내는 그 친구의 모습을 통해 처음으로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결코 약하지 않음을, 그리고 우리 모두 무언가를 바꿔나갈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DEMA의 많은 프로젝트는 기존에 누가 시키지 않는 이상 하기 힘든 것들이었기에, 열정만으로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던 학회 친구들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하기 위한 ‘틀’을 찾아 다니던 제 지난 날을 반성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게 되었습니다.


<너도 해볼래?>

 자신감이 자리잡기 시작할 때쯤, DEMA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권유를 했습니다. 너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니 너도 무언가를 해보지 않겠냐며. DEMA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다소 미흡할 수도 있었던 시도들을 막지 않았고, 그렇기에 저 또한 목소리를 가지며 의견을 내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회장단과 구성원, 그리고 신입 기수 사이의 평등한 관계와,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자유로운 커리큘럼 덕분에, 당시 신입 기수였던 저의 말 중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대부분 제안을 받아주었고 저는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저는 DEMA에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보다 창의적이고 의미 있는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저만의 느낌을 찾아가게 되었으며 작업에 애착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디자인의 ‘정답 없음’을 확인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더욱 용기를 내어 다양한 작업을 하고, 이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나갔습니다.


<봐봐, 너도 잘할 수 있지?>

 마지막을 장식하며, 무엇보다 힘이 되고 이 모든 이야기를 의미 있게 해준 것은, DEMA를 통해 외부로부터 이러한 시도들이 인정받을 수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때였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말하기 애매했던 제가 친구들에게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아도 귀 기울여주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으며, 마음을 담았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SNS에 올리면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고, 전시와 공유회를 통해 작업물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받음으로써 나와 우리의 생각이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험할 수 있는 자유로부터 기인해, 마음을 담아 원하는 작업을 하고, 그것이 세상에 가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궁극적으로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갖게 한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창조는 근본적으로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입니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다수의 경우 기존의 방식을 따르기 보다는 자유로운 실험으로부터 출발하고, 그 실험의 결과가 유의미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창조자는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이 자신감은 훗날 더 많은 실험을 하고 더 다양한 영역을 탐구해낼 수 있는 원천이 되어, 창조의 선순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DEMA를 통해 배운 창조적인 환경의 첫 번째 조건은, 실험해볼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고,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 다소 미흡하더라도 ‘너는 아직 아니야.’ 혹은 ‘그것은 올바르지 않아.’라고 말하기 이전에, ‘일단 해봐!’라고 외쳐줄 수 있는 분위기의 형성. 시도들이 미숙하고 질은 떨어질 수도 있으나, 구성원들은 더욱 빠르게 성장해나감으로써 더 새로운 것들을 세상에 소개시켜줄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나는 이렇게 생각해>

 창조적 환경의 두 번째 요건을 소개해 드리기 위해, DEMA에서의 다른 경험을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처음에 DEMA에 왔을 때, 저와는 사뭇 다른 사람들 덕분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은 세션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은 너무나도 깊은 생각과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좋아했으나, 질문을 찾아내기까지가 어려웠으며, 답을 하기 위한 사고의 깊이가 낮아 항상 벽에 부딪히곤 했고, 굳이 깊게 생각하면서 나를 괴롭히지 않더라도, 충분히 나에 대해서 잘 알고,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DEMA의 구성원들은 쉴 새 없이 저명한 철학자와 인류학자의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에게 소개하고,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한국 사회에서는 다소 듣기 어려웠던, 주변 사람들의 생각에 노출되었습니다.


<너의 생각은 어때?>

 이렇듯 생각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저는 이를 성격 차이라 여기며 흥미롭게 생각하는 정도에서 그쳤었습니다. 그런데 틀도, 지도자도 없는 DEMA의 특성 덕분에,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에 머리를 재빠르게 굴려가며 답을 해야 했고, 프로젝트에서 방향성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선택지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누군가가 길을 알려주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길을 따라오기만 하던 제가, 마치 넓은 우주 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 때도 있었지만, 이를 열심히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지?>

 질문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자, 저는 더 나아가 제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다루었던 주제를 다루더라도, 스스로에게 그 주제를 탐구하는 것의 의미,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그 주제가 끌리는 나의 내면적 이유 등 다방면으로 무언가를 탐구하고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갈수록 작업과 생각에 깊이가 더해졌습니다. 또한, 저의 생각과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시작하면서 제가 낸 결과에 스스로 귀를 기울이며, 그 과정 속에서 더욱 액티브하게 제 자신에 대해 배워나갔으며, 방향성을 제시해주던 ‘공급원’ 없이도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는 ‘문제 발견적 사고’를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본인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본인으로부터 출발하는 본인에 대한 해석이 살아감과 창조함에 있어 삶에 깊이를 더하게 됩니다. 또한, 남들이 보지 못한 영역을 스스로 발굴해내고, 그 위에 집을 짓는 일 또한 이런 ‘생각하는 힘’이 작용한 결과죠. 즉,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창조물의 성격과 종류는 다양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나를 정의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정의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평상시에 너무나도 자주 박탈 당하게 됩니다. 본인의 생각을 궁금해하며,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DEMA로부터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창조적 환경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창조 환경과 그 영향력


 

 창조란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어냄으로써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창조’를 강조하는 시대인 만큼 창조를 만들어내는 요소와 창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를 통해 본질에 가까운 창조적 환경을 많이 조성해나가고, 배출된 인재들의 진정성이 녹아 있는 결과물이 많이 생산될수록, 세상은 더 빠른 속도로 사람을 향해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요? 실험할 수 있는 자유, 자신감, 그리고 생각하는 힘이 뒷받침된 환경에서 양성된 크리에이터일수록, 조금 더 사명감을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영역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본인과 세상에 가치를 더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