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ssions/DEMA Talks

우리는 모두 우리 스스로를 존중할 권리가 있다.

안녕하세요. 디마 스튜디오 EYES 조휴담입니다. 이번 관점공유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주제 중, 제가 가장 고민이 많았고, 모두가 가장 고민이 많을 부분인 ‘자존감’에 대하여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 두 파트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0. 자존감



먼저, 관점공유에서는 자존감의 정의에 대하여 정확히 짚고 넘어가지 않았으나, 디마토크에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을 간단히 지칭하는 말로 ‘자신이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믿는 마음’입니다. 때론 ‘자신감’과 같은 단어와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자신감’은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다라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면, ‘자존감’은 자신을 스스로가 사랑하고 사랑 받을 만하다고 믿는, 자신의 가치 자체에 대한 믿음이라고 여겨집니다.



1.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좀 더 보편적인 모두의 자존감 얘기를 하기에 앞서, 저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려 합니다. 왜 저, 조휴담은 스스로를 존중하게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입학한 이후로 자존감이 격변하는 시기를 보내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아직 미성숙한 상태로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학교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여 자존감이 바닥으로 치닫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원하던 대학, 원하던 과에 왔다라는 성취감과 새로운 인간관계, 연애의 설렘 등 좋았던 환경에 도취되어 높은 자존감을 가졌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에는 다이어트에 실패한 경험 때문에 외모와 살에 대한 강박이 생기고 외모가 제 삶의 이유가 되어, 자아 존중은커녕 자기 혐오의 극단을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생각 없이 내뱉었던 친구의 말에 크게 상처받고 모든 안 좋은 일들이 제 탓인 것만 같이 느껴져 힘들기도 하였고요




제가 이렇게 우울하고 힘들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렇게 저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쳐온 요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적, 스펙, 연애, 외모, 친구의 말 한마디, 경제력. 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 어떤 외부적 요소 때문에 자아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 절대적으로 그냥 나는 나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자존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 이외의 외부적 요소들의 허구성과 그러한 요소들 때문에 자존감을 성립한다는 것의 허무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화가 루벤스가 그린 Samson and Delilah라는 작품입니다. 삼손과 데릴라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과 그가 사랑했으나 그를 배신한 블라셋 사람 데릴라의 이야기입니다. 삼손은 자신의 모든 힘이 머리카락에서 나온다는 비밀을 데릴라에게 알려줍니다. 이를 안 데릴라는 블라셋 사람들과 계략을 꾸며 삼손과 사랑을 나눈 뒤 삼손이 잠든 사이,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릅니다. 바로 이 장면을 그린 것이 바로 이 그림인데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삼손과 데릴라의 대주제가 아닌 이 그림 속 다른 소주제입니다. 데릴라 위에 보면 늙은 노파가 한 명 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노파의 얼굴이 사실은 데릴라의 얼굴과 똑같습니다. 아름다운 데릴라와 데릴라가 늙은 후의 모습을 상징하는 노파를 대비적으로 그려내어 아름다음에 대한 허구성을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 결국 제가 한 때 집착했던 외모가 얼마나 허무한 일이었는가를 표현해준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시절, 인간관계 때문에 자존감이 성립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사실은 굉장히 불안하고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이 자존감을 좀 더 북돋아줄 수는 있지만, 그 관계 자체가 내가 나 스스로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사실은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관계가 부서지면, 이 관계 때문에 존중 받았던 스스로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죠. 결국, 관계 위에 형성된 자존감은 살얼음이 얼은 호수 위의 집처럼 불안하고 위험한 것입니다.




하지만 조휴담이라는 존재, 저라는 존재는 영원히 저 하나입니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이렇게 디마토크를 작성하고 있는 저라는 존재는, 순간이지만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저희 부모님께 저라는 딸은 영원히 저 하나뿐이고, 저희 오빠에게도 저라는 여동생은 영원히 저 하나 뿐이며, 친구들에게도, 저희 디마 스튜디오에게도, 저라는 존재는 영원히 저만 할 수 있고 저만이 해냈고 저만이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의 고유성을 깨닫게 되었고, 이것이 제가 저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이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 자신이라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기 때문에 허구적이지도, 불안하지도 않습니다.



2. 좀 더 보편적인 우리의 이야기



이제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존중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좀 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고, 아주 약간은 철학적인, 그러나 저의 주관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난 주 박슬기 HEADS의 관점공유 속 실존주의와 관련이 깊습니다. 지난 주 박슬기 HEADS의 관점공유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내가 나로서 존재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저는 실존주의 그 자체에 대해 집중하고 싶습니다. 실존주의의 골자가 되는 것은, 개개인의 존재가 가진 고유성, 즉 개개인의 인간의 실존, 특히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자기 독자의 실존입니다. 저는 이 고유성, 실존 자체가 우리가 우리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내가 무엇을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모습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어떠한 환경에 살기 때문에,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나의 실존 자체가 독자적이며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고유성이 있기에 존중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도구와 같은 존재에 있어서는 본질이 존재에 앞서지만, 개별적 단독자인 실존에 있어서는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우선 실존하고, 그 후에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의 행동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간다.”라는 말에서 나온 말인데요. 실존주의 이전의 많은 서양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보편적인 본질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노력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왜 존재하는가 하는 본질보다는 그냥 여기에, 실존한다라는 사실 자체가 먼저이고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냥 실존하는 것으로, 이 실존은 바꿀 수 없고 고유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존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세상에 꼭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대사가 종종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쓸모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 필요한 부분이죠. 이것은 마치 우리 하나하나가 하나의 부품이 되고 톱니바퀴가 되어 세상이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부분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고 전체가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은 동양적인 세계관과 가깝습니다. 동양적 세계관은, 세상은 유기체처럼 이루어져 있고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마치 생명체의 각 기관들이 각자의 존재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듯이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기에 이 기관, 부분 하나하나가 모두 필요한 요소이고 그렇기에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우리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게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저 또한 자존감이 낮았을 당시 매우 고통스럽고 불행했습니다. 스스로를 먼저 존중하고, 사랑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사랑받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3.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존중할 권리가 있다.



결국 제가 관점공유과 디마토크를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에겐 모두 우리 스스로를 존중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논리가 저처럼 실존주의이든 동양철학이든 우리는 모두 우리 존재자체만으로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4. 덧붙이는 이야기: 자존감의 권리를 누린다는 것


제게 있어 자존감의 권리는, 헌법에 명시된 자유의 권리나 평등의 권리나 행복추구권 같은 권리와 같습니다. 말 그대로 침해 받아서는 안될 권리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잊고 삽니다. 쉽게 타인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며 권리를 침해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받더라도 넘어가곤 하죠. 하지만, 모두 자존감의 권리가 침해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하며, 이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것과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우리가 고민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죠. 자존감을 권리로 인식하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작은 말실수로 쉽게 무너져버리기도 하는 것이 바로 자존감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모두가 깨닫고 스스로를 존중할 권리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