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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s/DEMA Talks

소수자를 위한 물타기

          안녕하세요. DEMA Studio의 한나영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론과 편견에 대하여 제 생각을 말해보려고 하는데요, 그에 앞서 주변 지인들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던 내용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디마 여러분들을 포함해서 주변 지인들에게 당신의 클라이언트인 담배 회사에서 매출을 올리고 싶어 한다면 뭐라고 조언해 줄 것인가요?’ 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요, 이 때에도 사람마다 관심사마다 각기 다른 대답들이 돌아와서 참 흥미로웠습니다..

          ‘끝내주는 시대극을 제작해서 그 안의 배우가 담배를 주구장창 피우게 한다.’, ‘담뱃갑 디자인을 편리하고 유니크하게 한다.’, ‘2+1 등 묶음 판매를 한다.’등의 대답들이 돌아왔고, 이외에도 예술작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 가격 인하 등 기발한 아이디어와 함께 사람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인 1928년으로 돌아가 보도록 할까요? 같은 문제를 어떻게 교묘하게 풀어내었는지, 놀랍도록 사기꾼 같지만 논리적인 연극 한 편을 통해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대답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식을 주무르는 PR의 힘


1928, 미국의 담배 회사인 아메리칸 토바코는 주력 라인인 럭키 스트라이크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PR 전략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에드워드 버네이스에게 이 문제를 의뢰했고,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그의 요리 준비물로 여성 인권운동가와 언론, 그리고 의사를 준비했습니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오늘날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인데요, 프로이트의 대변인 역할을 할 정도로 서로 막역했던 버네이스는 삼촌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문제 해결에 있어 대중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역설하곤 했습니다. 버네이스는 먼저 여성 인권운동단체에 컨택하여 여성의 흡연권을 보장해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 ‘여성스러움이라고 하면 보통 어떤 단어들이 연상되시나요? 조신함, 청순함, 상냥함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사라진 척 하는)이러한 성역할들은 그 당시 여성들에게는 더욱 엄격하게 작용하여, 공개된 장소에서 여성의 흡연은 터부시되는 일이었습니다.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암묵적으로 피우지 않도록 합의된 집단의 기존 관습을 깨기 위해, 그리고 이 관습을 깨는 것을 대중 스스로가 택했다고 믿도록 하기 위해 버네이스는 하나의 퍼포먼스를 기획합니다. 1929, 자유를 상징하는 부활절에 아름다운 여성 모델 10명이 럭키 스트라이크를 피우며 뉴욕 맨하탄 5번가를 활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Torches of Freedom, 자유의 횃불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버네이스가 여성 인권운동가들을 부추겨 기획한 퍼포먼스로, 당시 공중의 이목을 끌만큼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버네이스는 이 퍼포먼스가 1회성 이슈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전에 컨택한 언론을 동원하여 기사화 하고, 이 사건은 곧 뉴욕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게 되지요. 담배가 꼭 여성의 주체성과 인권 향상을 상징하는 메타포일 필요는 없습니다. 술이 될 수도 있고, 바이크가 될 수도 있고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이 하면 좀 그런것들이 될 수 있었겠죠. 단지 버네이스의 클라이언트가 담배회사였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의 횃불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연출된 사건으로 여성의 흡연률은 4%에서 17%로 치솟았고, 버네이스는 담배를 소비하는 공중의 파이를 넓히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버네이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영국 보건의료계연합 의장을 지낸 저명한 의사인 조지 뷰캔을 인터뷰하여 그의 진술을 짜깁기합니다. “담배는 식욕을 조절해주며 식후 입안을 깔끔하게 소독해준다.” 권위자의 발언은 예나 지금이나 공중을 굴복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전문가의 인터뷰를 보도하는 동시에 Anti sweets 트렌드를 유도하여, 식후 디저트 문화가 일반적인 미국 식당에서는 디저트 메뉴에 초콜릿 케이크, 아이스크림 그리고 담배를 함께 판매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까지 연출됩니다. 담배에 대한 공중의 인식이 자유, 권리, 그리고 미용에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버네이스는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럭키 스트라이크의 매출을 높이기 위해 굳히기에 들어갑니다. 당시 럭키 스트라이크의 초록색은, 선호되는 색깔이 아니었고, 커진 파이에 비하여 럭키 스트라이크의 매출 자체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사교계의 유명인사인 프랭크 밴더립 여사를 꼬셔서 수익금을 불우 가정에 기부하는 녹색 무도회를 수 차례 개최합니다. 이러한 자선 행사를 통해 초록색에 나눔, 희망 등의 긍정적인 기분상징이 강화되었고, 어패럴은 물론 그 당시 하나의 아이템이라고 여겨지던 담배의 트렌드 컬러는 초록색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버네이스가 이 모든 여론을 떡 주무르듯 주물주물하는 과정에서 럭키 스트라이크가 한 번도 표면적인 주체로 나선 적이 없다는 것인데요, 어떻게 보면 참 오래도 걸리는 뻘짓일 수도 있는 여론몰이. 왜 그는 굳이 ‘2+1 등의 묶음 판매’, ‘할인 행사등 단기간에 파격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전략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버네이스는, ‘대중들은 자신의 의사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을 때 그 선택이 오래 간다.’고 역설했으며,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의해 행동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여론을 쥐고 있는 권력자들에게 지배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본인이 그 여론을 쥐는 권력자가 되어 공중이 내가 말하는 것을 스스로 옳다고 믿게끔 만드는 것이지요. 진실은 진실이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어필하기 위하여 연출되거나 발신자 입장에서 재해석된 사건을 사실과 유사하다고 하여 의사사건이라고 하는데 이는 버네이스가 이용한 주요 전략 중 하나이며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쓰이고 있는 PR 전략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PR은 시작됩니다.



PR(Public Relation)과 커뮤니케이션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자기PR’, ‘홍보로 알고 있는 PR이란 무엇인가? PR이란 Public Relation의 약자로, 조직과 그 조직을 둘러싼 주요 공중이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일컫습니다. 예를 들어, DEMA PR을 관리하라고 한다면, DEMA와 관련된 교수님, 혹은 DEMA 알럼나이, DEMA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학생들, DEMA 내부의 사람들, 프로젝트의 타겟 등 수많은 공중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겠죠. 물론 애드워드 버네이스가 펼쳤던 당시의 선전이 지금도 먹힐지는 사실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담배 소비에서 주체적 결정권을 가질 수 없었던 여성 문제를 꼽은 자유의 횃불 퍼포먼스는 지금 이 시대에서도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라도(실제로 1990년대 후반, 신촌에서 이대로 이어지는 기찻길을 따라 여성 대학생들의 흡연 퍼포먼스가 자주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담배가 입 안을 소독해준다.’는 선전은 허위 과장으로 비판 받을 게 분명하거든요.

커뮤니케이션학은 대학에서 학문으로 정식 연구되기 시작한 지 10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구요. 논의되기 시작한지 비교적 얼마 되지 않은 이 학문은, 각 시대 상황에 맞게 그 주제와 표현 방식에 변화를 겪습니다. 진실을 기반으로 하며 논리적으로 주장하지만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선전(publicity)’ 모델, 이에 대한 비판으로, 정확한 정보를 널리 전달하는 정보 전달모델, 그리고 발신자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설득모델과 상호 이해모델 등 PR의 형태는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설득모델은 발신자의 주장에 대한 수신자의 피드백을 참고로 하여 전달 메시지의 형태와 전략을 수정하는 것으로, 발신자의 의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호 이해모델은 수신자의 피드백을 통해 발신자의 목표와 전략까지 수정할 수 있는 유동적 모델입니다. 오늘날 가장 많이 쓰이는 모델은 상호 이해 모델로, 특히 마케팅PR을 주로 하는 기업들은 망하기 싫다면 상호 이해 모델을 이용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전과 같은 방식을 쓰지 않느냐? 그것은 또 아닙니다. Publicity Propaganda. 두 개념은 진실에 입각한 논리적 꼬심과 감정적 자극에 의한 꼬심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 목적은 사람들을 홀리는 것이라는 면에서 유사합니다.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수신자의 피드백을 참고로 하여 메시지 전달 전략을 수립했다는 면에서 설득모델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했다고 볼 수 있지만, 메시지의 진정성에 대하여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전도 불사했다고 봅니다. 그의 대표 저서가 Propaganda이기도 하구요. 이 글을 읽으면서, ‘저런 사기극에 과연 누가 넘어갈까?’ 하고 비웃은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똑똑해진 공중들은 이러한 선전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확신하실 수 있나요?

물타기. 흔히 쓰이는 인터넷 용어로, 파도를 타는 서퍼 처럼 공중이 여론에 휩쓸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인데요, 스스로 똑똑하다고 믿는 우리는 왜 물타기라는 인터넷 용어가 생길 정도로 여론에 휩쓸리는 것일까요? 오늘 하루 우리가 눈을 뜨고 일어나 생활하고 잠들기까지 아무런 마음의 불편함이 없었다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구조와 공유되는 가치가 옳은 것일까요? 비판적 시각을 가지지 않는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원래 그러한편안한 것들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당연시 되는 것들에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편견이라는 엄청난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합의되었다고 믿는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그것이 바로 편견



 지금까지 여론 조작과 물타기에 대해 적어 내려온 이유는, 제가 세상의 물타기에 의해 형성된 편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준 적도, 그리고 받은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한 평범한 여학생입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고, 여러분들과 같은 사회에서 자라온 후, 이화여자대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셔도, ‘,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알겠다.’ 하고 감이 오시는 분도 있으실 지도 몰라요. 영화 타짜의 그 지긋지긋하고도 유명한 대사인 나 이대 나온 여자야.’는 수십 만 명의 이대생들을 분노하고 울게 만들었습니다. 이화여대 학생 중 한 명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중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는 친구로부터 언니는 이대 다니니까, 명품 많겠다. 명품 가방 몇 개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용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에게 명품 가방이 몇 개인지 묻는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요? 전후 상황은 전부 잘라 먹고, 그저 이대를 다닌다는 조건이 명품 가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 자연스러운 사회적 인식이 불편하진 않으신가요? 이화여대에 다니고 있는 저는 매우 불편합니다. , 요즘도 한창 방송 중인 황금 시간대의 공중파 드라마에서, 온갖 여성 혐오로 점철된 등장인물에게 이대 나온 여자라는 유세가 대단하다.’는 설정이 들어가 있었고, 이에 분노한 이화여대 재학생들이 방송국에 시정 요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드라마 제작진들은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사회에서 공유되고 있는 편견을 받아들였고 컨텐츠 제작에 써먹었고, ‘소수자인 이화여대 학생들 외의 다수는 역시 아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불편함을 느끼기 전에 인식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듯이, 무심코 던진 사회의 편견에 소수자가 맞아 죽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회화를 거치면서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의 수많은 가치에 암묵적으로 합의하게 되는데, 편견의 피해자가 아닌 이상 내가 합의한 줄도 모르는 그 편견에 문제 의식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무심코 돌을 던질 수도 있는 것이겠죠. 그리고 대부분의 이러한 상황에서 소수자들은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몰랐어 미안해.” 몰랐기 때문에 고의가 아니었다는 가해자에게 더 이상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소수자들은 이미 상처 받고 난 후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몰랐다면 알게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이겠지요.



여러분들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분들에 대해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분들을 볼 때면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일제에 의해 상처받은 우리 민족의 슬픔이 떠오르시나요? 이 분들이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으로부터 고국으로부터 버림받고 더렵혀진 여자로 괄시받던 여성으로서의 한은 떠오르지 않으셨는지. 아니면 뒤늦게 이런 면도 있었지.’하고 감사하게도 떠올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분들의 진술 중에 일본군들보다 더 악질은 같은 민족이었던 한국군이었다.’와 같은 민족주의에 반대되는 진술은 조용히 묻혔다고 합니다. (일제가 낫다는 발언이 절대로 아닙니다. 민족주의적 담론에 위배되는 진술에 대한 배척을 짚고 싶었습니다.)왜 그랬을까요? 정치와 외교가 관련된 민족주의 담론은 소수자인 여성들의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시되는 것이 이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의 프레임으로만 보여지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과연 정말 당연해서인지, 아니면 소수자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뿐인지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해를 풀어주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인식을 통해 실행되고, 그 인식은 사람의 힘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의 틀을 깨는 것, 그리고 소수자들을 위한 편견을 깨는 것이 제가 DEMA에 들어와서 수많은 고민을 한 이후 진정 하고 싶다고 결론 내린 것입니다. 저는 바로 소수자들을 위한 물타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물타기는 공중의 이익을 위한, 윤리적인 PR 활동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옆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겠지만, 모든 공중이 알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챌린지일테니까요. 앞으로의 행보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생각을 토대로 더 깊은 고민과 함께 결정해나가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에드워드 버네이스 , <프로파간다>, 공존강미경 역, 2009

이건호 외 4, <커뮤니케이션과 사회>, 이화출판, 2013

 



*본 컨텐츠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구성되었으며, DEMA Studio의 성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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