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yes 최재훈입니다. 저는 제가 패션과 예술에 대해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예술이 되려는 패션
패션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옷을 파는 산업이 아니었습니다. 패션은 사람들에게 라이프 스타일과 이미지를 팔아온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발전된 예술 산업이었습니다. 코코 샤넬이 팔았던건 단순한 여성복이 아니라 근대적이고 당당한 다여성상이었고, 이브 생 로랑이 팔았던것은 그당시 패션 하우스에서 희미해지던 젊음과 새로움이었습니다. 패션은 언제나 대중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뉴욕, 밀라노, 파리의 패션위크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패션 쇼장의 가장 앞줄은 국제정치 협상과정에 버금가는 진지한 선정절차를 거쳐서 선별되었습니다. 그만큼 패션은 사람들에게 열광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패션 산업의 특성상 패션 하우스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팔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패션 하우스들은 그러한 것들을 충족시킬 문화적 원천을 끊임없이 찾아나섰고 결국 그들이 찾은것이 예술이었습니다. 예술은 수천년동안 인간의 감수성을 담고 있는 원천이었기 때문에 패션입장에서는 탐날 수 밖에 없는 주제였습니다. 패션은 이때부터 예술과의 콜라보를 활발히 시작하는데 그것이 1930년대부터입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안도 다다오와 함께 쇼장을 만들고 루이뷔통이 야요이와 패션 콜라보를 진행하며, 이브 생 로랑은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서 옷을 디자인하였습니다.
패션과 예술과의 밀월은 이렇듯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주목할만한 사실은 패션 자체가 예술이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패션 하우스들은 본인들의 제품을 작품으로 미술관에 전시를 하고 있고, 프라다는 매장을 꼭 미술관처럼 제품을 진열(?)해 놓고 있습니다. 또한 케이트 모스 화집과 같이 패션 관련 주요 화집이나 작품이 주요 미술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예술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패션
이러한 주제의 논의에서는 보통 ‘패션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에 대해서 담론이 많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뒤샹이 소변기를 예술이라고 선언하고, 다다이즘 작가들의 맹활약으로 예술은 무한의 가까운 범위와 극한의 자율성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래서 패션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담론은 개인적으로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것보다는 패션의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예술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는지가 더 의미있는 주제로 보입니다.
1.산업화된 예술
패션은 하나의 산업입니다. 창조적인 업종임에는 틀림없지만 엄연히 매우 ‘산업화된’ 근간을 가지고 돌아가는 세계입니다. 현대 미술도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점점 매우 산업화된 방식으로 작품을 생산하기 시작했스니다. 제프 쿤스나 데미언 허스트 같은 현대미술의 빅스타들은 자기 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100명 이상의 직원을 두고 있고, 회사의 사장인 아티스트의 철저한 통제하에 작품을 생산합니다. 사실 이 방식은 엔디 워홀이 처음 시작했지만, 엔디 워홀은 대량생산의 사회적인 모습을 행동으로 표현했다는 예술적 의미를 가지지만, 요즘의 현대미술 작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매우 기능적으로 대중한테 인기를 끌 수 있는 컨셉을 회의하고, 갤러리들과의 관계를 다지고, 투자도 받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작품은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같은 브랜드 네임을 가지고 팔립니다. 이러한 특성에 때문에, 작가들은 대중들을 사로잡을 아이덴티티와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더 열중하는 경향을 띄게 됩니다. 이러한 구조에서 미술도 ‘팔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이미지의 나열(정판)
패션은 이미지들을 흡수하고 이용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패션의 이 능력은 이미 다른 분야에서도 많이 벤치마킹해서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GD의 ‘너가 뭔데’라는 뮤직비디오에서도, 패션 브랜드의 오브제와, 쇼윈도, 고도로 계산된 자유로운 움직임, 등 상당히 음악 외 적인 요소들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가수’ GD를 볼 수 있습니다.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런 강력한 힘 때문에, 산업화된 예술도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미지의 시대에서, 이미지는 양식이나, 기능, 정서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원래 미술은 예술가들이 대상을 바로보는 새로운 시각과 표현법을 만들어내면서 발전해왔고, 미술사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시각과 표현법을 ‘사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누가 새로운 사조를 끌어오느냐, 이것이 미술 발전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미술은 누가 시각적 언어들을 잘 조합해서 대중을 사로잡을 이미지를 만들어내느냐의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죽음을 나타내는 해골이라는 것과 인간의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를 이용해서 만든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이러한 경향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문제점은 없는가?
예술이라는 것은 그전에도 언급했지만 새로운 사조를 끌어오면서 발전했습니다. 그 새로운 사조라는 것은, 단순히 새로워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은 인간의 감수성을 흔들고, 문화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훌륭한 작가들은 이러한 것들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예술은 패션의 영향때문에 수많은 시각적 이미지를 결합한 이미지와 아이덴티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자본과 결탁한 예술의 산업화 또한 이것과 병행해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최신의 이미지, 대중을 사로잡을 이미지를 결합해내고 뽑아내는 현대미술은 굉장히 트렌디한 경향을 보입니다. 작품이 발표되는 순간, 대중들은 놀라워하고 그것은 경매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됩니다.
하지만 화려한 현대미술의 이면에는 끝도 없는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컨셉 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잘 가공된 이미지에서 예술혼을 느끼는건 어려운 일 같습니다. 감수성을 전율시키는 예술혼도, 인간의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힘도 현대 미술에서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역으로 너무나도 많은 시각적 언어들이 패션과 현대미술에 의해 흡수되면서 점점 시각 이미지들이 고갈되어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튀는 이미지를 찾다 보니, 너무 튀기 때문에 평범하게 느껴지는 기현상이 이미 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술은 항상 작용과 반작용을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종교와 신이 지배하던 시대, 피렌체에서는 인본주의가 예술을 통해 꽃피웠고, 사진이 발명되면서 회화의 위기가 닥쳤을때 인상주의 화가들은 인간이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선사했고, 절제된 표현과 유교적 주제를 강조하던 조선시대 회화에서 신윤복은 화려한 색채와 인간에 대한 솔직한 표현, 그리고 에로티시즘을 들고 나와 조선의 회화를 흔들어놓았습니다. 점점 공허해지고 메말라가는 현대미술속에서 이것에 대한 반작용이 미술계를 다시 뒤집어 놓을거라 확신하며, 예술의 미래에 대해 저는 여전히 낙관합니다. 예술의 반작용이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합니다.
본 컨텐츠의 내용은 개인적인 의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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