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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s/DEMA Talks

Project 디마 안의 디마 _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Project 디마 안의 디마



‘Project 디마 안의 디마’는 2주에 한 번 디마인들이 모여 여러 컨텐츠를 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디마 사람들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번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Project 디마 안의 디마’에서 이루어진 논의는 ‘DEMA Talks _ Project 디마 안의 디마’로 정리되어 업로드됩니다.



Project 디마 안의 디마, 첫번째

-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1) 이 글은 영화 평론의 전문성보단 디마인이 같은 영화에 대해 어떤식으로 다르게 접근하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관점 공유의 연장선, 혹은 집단 관점공유라고 보시는게 좋습니다.


2) !스포일러 대량 있습니다!








Intro



혜윤: Project 디마 안의 디마, 그 첫번째 소재는 영화입니다. 한국 제목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원제는 <medianeras>이고 영어로는 sidewalls라는 뜻이네요. 3년 전인 2011년에 만들어졌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구스타보 타레토(Gustavo Taretto)감독이 자신의 단편을 다시 장편으로 연출한 작품입니다.


지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남자, 인터넷 속의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웹 디자이너 ‘마틴’. 공황장애로 몇년 째 은둔 생활을 해온 마틴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여자, 건축가가 되고 싶었지만 쇼윈도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는 ‘마리아나’. 그녀는 4년간의 연애 끝에 만난 연인의 낯선 모습에 이별을 고합니다.


이 도시 어딘가에 있을 두 사람은 서로를 찾을 수 있을까요?







POINT 01. 도시 속 우리



혜윤: 영화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도시의 건축물들에 고립되어 가면서도, 관계맺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 또한 도시 안에 살고있기 때문에 공감하고 웃은 대사들이 많아요. ‘건강하게 사는 건 스트레스에요.’, ‘쇼 윈도는 내부에도 외부에도 포함되지 않는 공간이다.’ 같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통찰들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한건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잘못 걸린 전화였어요.’ 같은 일상적인 대사가 이 영화에서는 가슴을 울린다는 점이에요. 저도 그렇거든요. 모르는 전화를 받았을 때 스팸이면 짜증나기보다는 아쉬워요. 번호가 없어진 누군가가 전화한 줄 알았는데.. 하면서.


서울에 사는 제가 주인공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건, 이 영화가 <쥬뗌므, 파리>, <아이 러브 유 뉴욕> 같은 도시 홍보용 로맨스 영화와 다르다는 걸 증명하는게 아닐까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이라는 제목보단 영어로 <sidewalls>라고 하는게 내용과 더 맞았을 것 같아요.  



지윤: 동감해요. 측벽들로 가로막혀있는 도시 속의 이야기들에 공감하면서 원제인 sidewalls가 이 영화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빠른 성장과 함께 제멋대로 들어선 건물들 속을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 누구나가 마틴이자 마리아나이기에 이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지 않았을까해요.


저는 ‘다섯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아파트에서부터 닭장이라 불리는 원룸까지 아파트의 분류기준은 방의 개수가 되었다.’ ‘사람의 등급을 나누려 집도 만들어진다.’ 는 시선이 와닿았어요. 집을 만드는 사람도, 집에 사는 사람도, 집을 바라보는 사람도 집을 숫자로 묘사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 집은 방이 몇개야, 몇 평이야, 몇 층이야, 얼마야 같은 묘사로 집을 가늠하고 심지어는 그 집에 사는 사람까지 무의식적으로 가늠해버려요.


영화 초반부에 한 어린 아이가 3미터도 채 되지 않는 발코니 공간에서 달리지도 못한채 끝과 끝을 오가며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나와요. 도시가 커지면서 건물들이 들어서고 사람이 있을 공간은 많아지는 반면, 사람을 “위한” 공간은 적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거와 이혼, 폭력, 대화의 단절, 무관심, 우울증, 자살, 공황발작, 비만, 비활동적인 생활. 이 모든 것들이 건축가들 때문이라는 시선에 일리가 있다고 봐요. 건축에서도 인간을 중심으로 한 시각이 더욱 주목받을 필요가 있어요.   






PS 01. 유럽풍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효율적인 식민 통치를 위해 당시 스페인 국왕의 칙령에 따라 바둑판 모양으로 건설된 도시입니다. 도시 중심부에 광장을 두고, 행정관청, 대성당, 시장 등이 배치된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넘치는 농축산 자원으로 부를 쌓아 스페인뿐 아니라 당시에 유럽에서 유행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여왔고, 19세기 말엽에는 이탈리아를 필두로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이민자가 몰려들어왔다고 합니다. '파리와 마드리드 그리고 브뤼셀을 합쳐놓은 것 같은 도시'라는 평을 들을 만큼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프랑스 파리보다 더 화려한 유럽풍 도시가 되었습니다. 연극, 오페라,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콜론극장은 아름다운 건축 디자인으로 밀라노의 라스칼라, 비엔나의 오페라하우스, 파리 국립 극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PS 02. 신경건축학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을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라 합니다. 건축공간이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학적 측정이 시작된것은 1980년대 환경심리학이 대두한 이후 부터입니다. 그리고 최근 신경과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맞물려 뇌의 활동을 중심으로 건축공간과 인간의 심리와 행동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신경건축학 분야가 태동하여, 2003년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건축가들이 함께 ‘미국 신경 건축 학회’를 시작했습니다. 빛의 강도와 파장, 색, 기온, 공기의 움직임, 풍경 속의 움직임 등을 측정해 이를 수치화하고, 이러한 풍경 속에서 활성화되는 뇌 부분을 관찰하고, 긴장완화와 같은 생리적 반응, 호르몬, 심장박동 등의 변화를 측정하여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연구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POINT 02. CF 감독이 만든 영화



혜윤: 영화를 보기전에 CF 감독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사실을 엄청 의식하면서 봤어요. 그래서인지 광고 느낌나는 장면 찾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예를들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건축들을 숏컷들로 보여 주는 것. 이런 식으로 장면 전환을 빠르게 하는게 눈에 많이 띄더라구요.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등 여러 기법들을 사용하되, 부담스럽지 않구요. 가장 맘에 드는 건 엘레베이터나 수영장 레일에서 보이는 숫자들을 타이포그래피로 활용한 씬들입니다. 전체적으로 일상적인 이미지들을 감각적으로 잘 닦아놔서 예쁜 선물같아요. 디자인적 감성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즐거워 할 그런 선물이요. 아예 여자 주인공 ‘마리아나’의 직업이 쇼윈도 디자이너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비중으로 영상을 감각적으로 만든게 오히려 아쉬워요. 영화가 진행되면서 지루해지는 부작용이 있거든요. 전체적인 흐름보단 이미지들의 병렬이 주가 되어 지치기까지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힘을 뺄 땐 빼서 리듬감을 살렸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지윤: 저도 모든 장면이 한 장면, 한 장면 의식해서 구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었다는 느낌보다는 영화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도시에 대한 단편적인 통찰들이 매력적인 영화이고, 그러한 통찰들이 장면마다 잘 구성되어 담겨있더라구요. 예를 들어 빌딩의 외장 유리에 반사된 도시의 모습을 천천히 잡는 장면은 자칫 지루함을 유발하는데 한몫 할 수 있지만, ‘빛나고 화려하지만 일그러진 도시’라는 통찰을 잘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더라구요.


좋은 사진전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좋은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기도 해요. 영화가 남기는 잔상도 짙어요. 길을 걷다 익숙한 이미지들이 포착되어 상기해보니 영화에서 본 이미지들이더라구요. 버스를 타고 가다 마리아나의 나레이션이 옅게 들려오기도 하구요.   






PS 03. 미장센


Mise-En-Scene, 연극에서 파생된 불어로 문자 그대로 '무대 위의 배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의 미장센은 프레임 안에 배경, 인물, 인물의 분장, 의상, 배치 등의 연출을 지시하며, 배우들의 동작선 연출도 포함된다고 합니다. 넓게 보면 영화의 미장센은 화면 크기와 카메라 움직임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즉 장면을 만드는 모든 요소들을 의미합니다. 미장센은 한 화면 속에 담기는 모든 구성 요소들이 주제를 드러내도록 하는, 감독의 연출역량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영역이라고 합니다.




POINT 03. 너와 나의 관계맺기



지윤: 결국 각자의 길을 찾아 나서는 한때의 연인, 오랜 시간을 함께 했어도 때론 너무도 낯선 타인으로 다가오는 연인,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점점 줄어만가는 연인. 외로움에 살을 맞대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에 지치고 마는 관계, 필요할 때에만 연락하게 되는 얄팍하고 일방적인, 조금은 씁쓸한 관계. 이 모든 단면들에도 불과하고 누군가를 찾아나서고 관계맺는 사람들. 영화가 담고 있는 이 모습들이 남의 얘기 같지 않게 느끼는게 저뿐만은 아닐거에요.


관계에서 소통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마르셀라와 마리아나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마르셀라는 조금은 현란해요. 빠른 템포 속에 다양한 이미지들로 제시되는 그녀의 관심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녀가 관심갖고있지 않은 분야가 있을까, 어쩌면 실은 그녀가 관심갖고 있는 분야가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가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얘기해요. 상대가 이태리어와 같이 통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면 아름다운 당신을 놓칠 수 있다구요.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얘기밖에 하지 않아요. 심지어 스페인어가 아닌 불어를 고집스레 구사하죠. 과연 그녀는 소통한걸까요?


반면 마리아나는 조금 달라요. 가상의 어떠한 이미지들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죠. 나이, 별자리, 좋아하는 음악, 종교와 같이 누군가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 ‘오늘 뭐했어요?’ 라고 묻는 대목에서 누군가와 관계맺기위한 첫 걸음이자 소통의 시작을 목격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의 오늘을 궁금해 해주는 사람이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이 아닐까요.



혜윤: 저는 사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 남녀 주인공의 특별한 만남이 스토리의 다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도 막 봤을 때는 재미없기까지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일 뿐, 별 감흥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윤언니와 이야기를 하면서 스토리를 ‘로맨스’가 아닌 ‘관계’에 초점을 맞추니, 그제서야 뭔가 느낌이 오더라구요.


영화 안에선 ‘관계’가 참 많이 나와요.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 모두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려다가 계속해서 실패하죠. 힘들게 내가 가진 단점들, 괴짜같은 면들을 다 숨기면서도 실패뿐이니 지쳐요. 심신이 고되니 스트레스가 오고, 그 스트레스는 결국 가벼운 우울증으로 번집니다. 그런데 이거, 전혀 남 일 같지 않아요. 


소통하지 못해 실패한 관계를 보여주는데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쓰는걸로 보아, 이 영화는 로맨스 ‘첨가’ 영화라고 부르는게 더 정확한 것 같아요. 감독은 결국 조금 찌질하고 불완전하고 가끔은 존재자체도 의문스러운 나의 속살을 보여주는 순간, 그러니깐 진짜 소통하는 순간부터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건 비단 연애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죠. 마리아나가 ‘오늘 뭐 했어요?’하고 소통한 것 처럼, 저도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들과는 진짜 소통을 시도해야겠어요.







Outro



혜윤: 번개 자체의 목표가 서로 부담없이 얘기 하자! 였기 때문에, 영화도 영화지만 지윤언니랑 얘기하면서 너무 재밌었어요.


저는 영화에 대해 영상미, 스토리의 신선함, 몰입도 등 가치를 두는 항목에 대해 전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기억나는 장면들을 얘기하는 반면, 언니는 처음부터 아주 세세히 들어가서 말씀하시더라구요. 포스트잇 4장과 노트 필기 4쪽의 차이ㅋㅋ 처음에는 저정도로 세밀하게 볼 필요가 있나.. 생각했는데 언니가 쓴 걸 보면서, 언니랑 이야기 하면서 <관계란 소통이다>라는 유레카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생각했으면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지 못했을 거에요. (게다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건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경험도 덤으로...ㅠㅠ)


보고, 이야기하고, 듣고, 정리하고, 쓰고. 마지막으로 영화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장기 프로젝트도 하나 시작하고. 어떤 영화도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은 적은 없었어요.


‘정해진게 아무것도 없다.’가 유일하게 정해진 거라 앞으로는 어떤 걸 하게 될지, 그리고 어떻게 디마토크를 쓸지 기대됩니다. 사실 다 필요없고 제가 너무 즐거웠으니 번개는 계속될 예정이에요:)



지윤: 사람마다 보는게 다르다라고 말하지만 정말로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혼자 생각에 그치거나 동의하는 것들만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경우들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이 자리가 너무 만들고 싶었어요.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경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다르구나.’ 라는 것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고 누구나 어디에선가 ‘아!’ moment를 가질 수 있을테니까요.


준비하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많은 ‘아!’ moment를 가졌어요. 어떤 컨텐츠를 함께 하느냐,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더 다채로운 논의들이 나오게 될 것 같아요. ‘Project 디마 속의 디마’를 즐기고 있어요. 앞으로 더 재밌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