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 관점공유를 맡은 김진희입니다. 오늘 제 관점공유의 주제는 無知입니다.
‘무지함’에 대해 과거에는 인지하지 못했다가 요즘 들어 문득 문득 인지하고서는 놀라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아서 저의 ‘무지함’에 대한 관점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 제가 이야기할 ‘무지’라는 주제의 테마는 ‘소비’라는 행위 아래에서 다루어 집니다.
일단 저의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맥도날드와 롯데리아에서 파는 패스트푸드, 편의점음식(삼각김밥, 도시락 등), 라면을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먹지 않는데요, 이러한 식습관의 시작은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들었던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행여 저 소문들이 거짓이더라도 다시 저 음식들을 먹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제 친구들은 그 소문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패스트푸드 소비를 그만두지 않았지만 저 혼자 그 소문의 알 수 없음에 대한 ‘무지’에서 헤어나올 수 없에 패스트푸드 소비를 포기했습니다. 짧게 말하자면 저의 이러한 식습관은 무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면에 관해 얘기를 해보자면 고등학교 2학년때 어느 기사를 읽었는데, 그 기사는 라면이 우리의 내장에서 얼마 동안 어떠한 형태로 머물고 소화가 되는지에 대해 다루는 기사였습니다. 사실 그냥 글로만 읽으면 제가 별로 동요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라면이 내장에서 탱탱 불어있는 내시경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라면에 방부제가 얼마나 많이 들어있고 얼마나 우리 몸에 해로운 지에 대해 피력하니 제가 거기에서 라면에 대해 역한 감정을 느껴 그 후로 라면을 입에 대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난 18년동안 라면을 소비했던 것은 라면에 대한 ‘무지’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든 생각은 제가 라면을 끊은 것 또한 이 라면 실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한번의 라면 실험이 무조건 맞는 것도 아닐 테고 적절한 환경과 조건에서 실험이 되었는지에 대해 저는 여전히 전혀 알지 못하는 ‘무지’의 상태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채식주의에 대한 얘기를 꺼내보자면 처음 제가 채식주의에 눈길이 간 것을 2015년 제가 1학년때 입니다. 혹시 ‘있어빌리티’라고 들어보셨나요? 있어빌리티란 있어 + ability의 합성어로, 남들에게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제가 처음에 채식주의 채식주의 이러고 다녔던 건 순전히 이 있어빌리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남들보다 뭔가 있어 보이고, 더 윤리적이고 더 나은 사람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표면적으로만 윤리적인 사람인척 하고 다니다가 그 해 가을에 정말로 채식주의자인 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어리석게도 그 언니가 채식을 하는 이유도 저랑 비슷한 이유일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대학을 다니면서 만났던 채식주의자들은 대부분 겉만 요란한 빈수레였기 때문입니다. 다들 채식에 대해 무지한 채로 그냥 무작정 겉치레뿐인 윤리를 따져가면서 채식을 하는 거죠. 하지만 이 언니는 달랐습니다. 자기가 채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여러 윤리적 근거들과 철학들을 제게 들려주었고 저는 거기서 저의 무지함이 완전히 패배당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패배를 당하고 저는 다시금 올해 초 채식주의에 발을 들였습니다. 제 채식주의에 사실 ‘윤리’는 없습니다. 오로지 저를 위한 식습관 개선이며 따라서 남들에게 채식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니지도 않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나와 살았는데 자취하면서 필수로 항상 여러 개 구비해 두었던 게 스팸입니다. 근 2년간 스팸 소비가 상당했는데, 그냥 어느 날 문득 저의 몸을 상하게 하는 스팸이 너무 싫어졌습니다. 그 후로 남은 스팸들을 다 선물로 줘버리고 그날부터 나름의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혹시 flexitarian이라고 들어보셨을까요 flexitarian은 flexible vegetarian의 준말이고 채식주의자를 나누는 여러가지 분류 가운데 가장 소극적인 채식주의자입니다. Flexitarian은 육류 소비를 허용하며 안 먹는 것 없이 다 먹습니다. 다만 육류의 소비를 줄여 육류를 비주류로 두는 것입니다. 기존에 우리가 행해왔던 것처럼 원칙 없이 아무 때나 입맛 당기는 대로 고기를 탐하지 않고 육식과의 결별이 아닌 채식을 중심에 두고 융통성 있게 육식을 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이것을 실천하고 있냐,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집에서 육류 즉, 붉은 고기를 섭취하지 않고 계란과 어류, 유제품을 포함한 채식만 합니다. 또한,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데, 음식을 고를 때 고민되는 메뉴가 있다면 거기에서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육류의 포함여부입니다.
소극적인 채식을 하지만 제가 그래도 채식에 대해 공부를 해보려고 현재 ‘채식의 배신’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직 앞부분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또 다시 ‘무지’함의 늪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농업’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말해 주지 않았고,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파괴가 너무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세상이 원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짧게 나마 읽었던 부분 중에 저의 무지함을 깨달은 몇몇 군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먹는데, 사과 또한 우리를 먹습니다. 사과도 ‘먹는 존재’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한 일화를 들어보자면 사람을 묻은 곳 근처에 사과 나무를 심었더니 후에는 시체는 없고 사과나무의 뿌리가 그 무덤을 채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과는 자라는데 흙, 즉 피, 뼈, 유기체 등을 필요로 합니다. 사과도 정말로 ‘먹는’ 존재였던 거죠. 인간은 생태계의 순환고리 밖의 독립개체에서 순환고리 안으로 끌어들여온 지점이죠.
또한 대게 사람들은 식물의 ‘재배’와 동물의 ‘사육’이 동식물을 인간의 통제권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이 책을 읽고(아직은 책의 초반부이지만) 인간의 ‘무지’함이 깔려있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식물의 사육과 재배 과정에서 인간은 주도권을 잡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유전자와 번식 원리 등을 모두 다 알고 모든 것이 우리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8500만 에이커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밀과 옥수수는 아마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은 인간이 그들을 키우기 위해 중노동을 하고 있고 그들은 인간에 의해서 힘쓸 필요도 없이 자손 번식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가축들이 추운 겨울을 잘 나게 하기 위해 밖이 아무리 꽁꽁 얼어 있더라도 물과 먹이를 가축들에게 가져다 줍니다. 가축들은 아무 중노동 없이 편하게 살아가는 거죠. 그들의 편익을 위해 우리가 그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적응하고 진화해 왔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시말하면 농업은 끝없는 노동을 수반으로 합니다. 수렵, 채집을 하던 사람들은 일주일에 17시간을 일해 다른 창의적인 시간을 할 수 있는 잉여시간이 있었지만 현대의 농경인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일만해도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이 더 극명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사실 이 지구의 주인은 식물이며 동물과 인간들이 그들을 위해 삶과 중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무지’에서 비롯한 생각들도 드는 요즘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최근에 소비하면서 느낀 무지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의 소비는 철저하게 ‘무지’함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나 기능성 화장품을 살 때 가장 많이 느끼는데요, 화장품에 대해 무지할 뿐 더러 관심도 없기 때문에 대체로 이들을 구매할 때는 추천받거나 유명한 것 또는 그냥 적당히 맘에 드는 것으로 구매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추천’과 ‘유명’한 것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자신의 피부타입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화장품이 피부에서 깊숙이 스며들 때 피부 아래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 또한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하거나 추천하는 대부분의 화장품들은 그냥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고 적당히 괜찮은 제품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 적당히 좋음이라는 게 사실 피부 밑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제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명하다고 추천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 그들이 써보고 나쁘지 않으니 추천을 해주는 건데, 다른 좋은 제품들이 분명 있을 수도 있는데 ‘유명’하다는 인식과 ‘트러블이 나지 않으니 괜찮다’라는 인식이 우리를 무한한 ‘무지’함으로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무지’함에 대한 고찰이었고, 끝까지 무지한 저의 발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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