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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sions/DEMA Talks

나는 덕후가 아니다



나는 덕후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DEMA studio heads 최준원입니다. '덕후'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공부 덕후', '기타 덕후', '소설 덕후' 등등, '덕후'라는 말은 우리 사회 속에서 꽤나 긍정적인 어투로 사용되는 신조어 중에 하나입니다. 종래의 '오타쿠'의 의미와는 달리, '덕후'는 특정 분야나 취미에 마니아 수준을 넘어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 덕후라는 단어 때문에 생겼던 개인적인 고민들과 그 극복 과정을 털어놓는 시간으로 관점 공유를 채워봤습니다. 글의 시작에 앞서, 이번 관점 공유는 단순히 저의 고민과 슬럼프에 관한 글이기에, 다소 자조적이거나 논조가 명쾌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뭘 좋아할까?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


줄어드는 일자리, 스펙 경쟁, 자소서, 첫 직장. 뉴스에서도, SNS 에서도, 친구들을 만나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어딜가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많은 20 대들이 이런 단어들과 관련된 고민을 품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 겪어온 고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뭐 먹고 사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막막하고 답답한 고민들을 해온 지난 날들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배, 어른들은 이런 조언을 반사적으로 툭 던져주곤 합니다.


'니가 좋아하는 일을 해!'


참 명확하고 쉬운 답변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직 찾아나가고 있거나, 별다른 취향,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겐 '좋아하는 일을 한다'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때문에 ‘만(10,000) 시간의 법칙’을 언급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무작정 오랜 시간 동안 즐기며 하다 보면 어느새 부와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때론 무책임하다고까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 직업으로 발전시켜나가야만 하는 20 대 중반의 시기를 살아가며, 저는 이런 고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주변의 ‘덕후’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무언가를 미친 듯이 좋아해본 적이 없는 저로써는 한 가지에 미치도록 몰두하고 그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덕후들의 심리가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 가지를 그렇게 좋아하게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 '좋아함'이 자연스레 무언가를 행하는 단계로까지 자신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나처럼, ‘나는 뭘 좋아할까’라는 걱정은 덜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력=능력?


덕후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디마 스튜디오 안에서만 해도 해리포터 덕후, g.o.d 덕후, 빵, 과자 덕후 등 각양각색의 덕후들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봐도, 누구나 알만한 세기의 위인들 혹은 혁신가들 역시 대부분이 덕후입니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12 살 때 HP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주파수 측정기를 만들 부품을 요구하는 당돌한 덕질을 했었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위인, 이순신 장군 역시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 쏘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무술 덕후였습니다.


이렇게 '덕력(⼒)'은 위인들의 성장 과정 속 ‘징후’라고 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덕력을 뽐내는 위인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 혁신들을 보고 있자면 덕력과 능력은 뗄래야 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나가 너무 좋으면 그 분야에 미치게 되고, 미치게 되면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고, 결국엔 전문가가 되고, 범인들을 제끼고 그 분야의 제일 대단한, 열정 넘치는 최고의 위인이 되는 매커니즘은 너무나도 공평하고 논리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덕력'을 항상 동경해왔던 것 같습니다. 덕력은 말 그대로 정말 힘(力)입니다. 사회가 원하는,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 있는 덕후들. 비단 그들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명확히 알고 본능적으로 이끌리며, 그것을 생산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까지 기꺼이 노력을 쏟아 붓는 그 열정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취향조차 비교대상?


그렇다면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내가 좋아하는 것 무엇인지, 나는 무슨 덕후인지 자신에게 물어보지만 도무지 '덕질'을 했다 싶은 건 결코 없습니다.


저는 덕후가 아닙니다. 덕후는 커녕 평범한, 별날 것 없는 사람입니다. 외모나, 직관적인 능력이나, 취향이나 모든 게 평범하기 그지 없습니다. 좋아하는 옷들도 그렇고, 취미들도 그렇고, 그렇다보니 딱히 덕후들에게는 있는 독특하고 재미난 스토리도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이라곤 단지 자기 전에 영화보기, 노래하고 듣기, 가끔 하는 위닝, 국밥, 웨이트 트레이닝 정도랄까?


사실 이러한 저의 취향을 남들(덕후들)의 그것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취미나 취향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그 몰입도의 정도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 학년, 24 살이라는 현실의 벽과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 마음은 참 갑갑해지는 것입니다. 덕후들은 본능적으로 타고난 취향으로 자기가 전문가가 되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그 분야의 능력과 지식과 혜안들을 키워나가는데, '내가 좋아하는 이 소소한 취향들은 나를 어떻게 발전시켜주는 걸까? 과연 나의 취향은 덕후들의 그것처럼 생산적인가?'라는 물음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런 물음들은 해결될 수 없는 내 현재 상황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그리곤 정말 사회도 나를 그렇게 바라볼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떤 전략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끝이 나지 않는, 지금 생각하면 '무의미한' 자책과 회의감이 점점 저를 슬럼프로 몰아갔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이것저것 부딪혀보며 새로운 경험을 향해 나를 내던져야만 했지만, 저는 오히려 무기력해져만 갔습니다. 뭘 하려고 해도 힘도 나지 않고, 뭘 해야될지도 모르겠고, 생각하기도 싫고, 눈앞에 주어진 일들만 치워내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무력한 날들을 보내던 중, 바닥을 찍고 나니 정말 아무거나 뭐라도 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시작한 것이 바로 운동이었고,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된 시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자신감 넘치고 패기 있었던 때는 운동을 제일 열심히 했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생산성'이란 기준으로 비교하며 '이 시간에 다른 도움되는 걸 해야되는데..' 라고 방치했었던 내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무가치하고 자조적인 고민들 때문에 내 취미를 망치고 결국 슬럼프로까지 빠지게 했던 나쁜 모습들이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비생산적인 취미라 치부했던 소소한 나의 활동을 시작하니 삶의 활기도 점점 되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덕후가 아닐까' 비관적으로 생각했었던 것들도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꼈고, 지금도 차차 슬럼프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를 포함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 혹은 이러한 고민에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 분들 모두가 이미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의 취향과 덕력에 나의 취향을 비교할 필요 없고, 그것을 굳이 나의 진로와 연결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취향이 장래에 자연스레 연결되는, 즉, 좋아하는 걸 잘하기까지 하는 그런 축복받은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나를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순간순간 하고 싶고, 호기심이 이는 것을 시도해보며 몸 담아보면 자연스레 경험이 늘 것이고, 그 점들이 연결되어 내 미래가 될 것이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고민들로 인해 한없이 눈앞이 캄캄해지는, 무기력해지는, 나락으로 떨어져만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본인이 하찮게 생각했던 자신의 취미나 취향, 혹은 내가 가진 능력들에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비단 사회적, 객관적으로 생산적이지 않고 또 그 수준의 깊이가 깊지 않다하더라도, 그것들은 역설적으로 무기력의 늪에 빠진 나를 위로해주고, 다시 수면위로 튀어 오를 수 있게끔 하기도 한답니다. 나아가 이렇게 나의 취향을 ‘되돌아보는’ 행위가 나를 한 분야의 덕후로 만들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유사한 슬럼프는 언제든 또 찾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비(非)덕후'로써 소소한 나의 취향과 능력들을 즐기는 태도로, 그것들로부터 위안과 힘을 얻어가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 다시 질문을 던져 보려고 합니다. 지금보단 더 쉽게, 탄력적으로 슬럼프를 극복할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