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ssions/DEMA Talks

Eternal Sunshine - 김희조

 

 

 영화 “Eternal Sunshine”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영화’라고 지칭되는 만큼 자주 회자되고

흥행한 영화이다. 하지만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Eternal Sunshine 은 미셸 공드리의 것이 아니라

가수 즈네 아이코의 “Eternal Sunshine”이다. 공드리의 영화 속 짐 캐리의 Eternal Sunshine, 곧

영원한 햇살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히 만난 클레멘타인이 주인공 조엘의 사랑이자 삶을

비춰주는 영원한 햇살인 셈이다. 하지만 즈네 아이코의 Eternal Sunshine 은 조금 다르다. 이

곡은 노래만 듣는 것보단 뮤직비디오를 같이 봐야 더 와 닿는데 대충 가사의 내용이 “지금 당장

내가 죽게 된다면 나는 후회할 것이 없다. 잘 살았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면 아이코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는 순간을 담고 있는데 사람이 죽기 직전 그 사람의

삶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는 말처럼 그녀에게 소중한 순간들과 사람들이

플래시 라이트처럼 터진다.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그녀의 딸과 노래가 발매되기 약 2년 전

암으로 죽은 형제로 즉, 즈네 아이코에게 ‘영원한 햇살’은 그들인 셈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려는 듯 마지막 장면에서는 “You are my eternal sunshine”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관점 공유의 순서가 나에게 돌아오게 되면서 도무지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내 삶의 방식만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비록 시작은 이렇게

무겁게 되었지만 아주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려고 한다. 나는 나의 죽음에 관한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려고 한다.

평소 나는 망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아마 친구도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죽는다면”이라는 망상은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상상일 거라 믿는다. 이 죽음에 대해 독특한 방법으로 풀어낸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바로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소설을 원작으로 한 “13 Reasons Why”이다. 특이하게 다른 소설 원작의

드라마나 영화와 다르게 원작보다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드라마이다. 최근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아가는 넷플릭스에서 너무나도 감명 깊게 본 드라마다.

 

 

 

 

 

 

 

 

 

 

 

 

 

 

 

 

 

 

 

 

 

 

 

 

 

 

 

이야기는 해나 베이커라는 여고생이 자살을 하면서 시작한다. 이미 시작부터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그녀는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그녀가 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13가지 이유들을 가감 없이 들려준다. 해나는 자살하기 전 그 이유들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했고 녹음된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보내줌으로써 그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자살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그 중심에는 또 다른 주인공 클레이 젠슨이 사건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크나큰 여운에서 쉽게 벗어나올 수 없었다.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내가 사실은 클레이 젠슨이었다면? 내 주위에 또 다른 해나 베이커가 있었던 건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실제로 그 사건에 연루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죽음은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드라마 속 한

에피소드에서 해나 베이커는 나비효과에 대해서 언급한다. 13가지 이유 중에서는 굉장히 사소한

이유부터 직접적인 이야기까지 모두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게 왜 이유가 되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테이프를 다 들을수록 루머는 또 다른 루머가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해나가 죽은 이후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큰 파장이 되어 덮친다. 한국어

제목이 “루머의 루머의 루머”인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의 망상 또한

항상 오열과 함께 끝맺음 되는데 이는 내가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내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 나의 가족이나 친구들, 남자친구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마음이

들지에 대해 감정이입이 되면서 한없이 슬퍼지고 “죽지 말아야지”라는 어쩌면 의미 없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도 해나 베이커처럼 나의 죽음과 관련될 이야기들을 기록해 보고자 했다. 나의 삶을

비춰주는, 내가 죽지 않게 힘이 되는 Eternal Sunshine에 대한 기억이자 기록이다.

나의 Eternal Sunshine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 애써도 결국 가족과 친구라는 뻔하디 뻔한 답뿐이었다. 인생 복잡하게 살 필요 없다는 게

이런 데서 온 말이 아닌가 싶다. 최소한의 사회 조직을 이루는 사람들만 남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나의 사소하고 가벼우며 쓸데 없는 기억들을 공유할 것이다.

 

 

 

 

 

 

발표 때 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사적인 이야기가 많아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가장

오래된 기억만 자세히 얘기하고자 한다.

 

<아빠>

4살 때 – 아빠 퇴근했을 때 :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정말 작았다. 아기 때이긴 하지만 아직도

원룸에서 세 가족이 바닥에 이불 깔고 자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아빠는 항상 바쁘셨다. 물론 지금도

바쁘시지만 그때는 훨씬 더 바쁘셨다. 아빠는 항상 내가 잠이 들어서야 살짝 취하신 상태에서

집에 돌아오셨다. 그럴 때마다 방바닥에 누워서 정신없이 자고 있는 나에게 뽀뽀세례를

퍼부으셨는데 철들기 전까지는 그 기억은 그냥 귀찮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좀 크고 난

뒤에는 정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

10살 때 – 엄마 속상해서 운 날 : 엄마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던 날이다. 그 당시

엄마는 나에게 수영을 다닐 것을 계속 권했었다. 하지만 나는 내키지 않아서 단박에 거절을 했다.

근데 그 이후에 유난히 친구들이 수영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다 친한 친구가 나에게 수영을 같이

다닐 것을 권했고 나는 단순히 친구랑 수영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서 집에 돌아가자마자

엄마에게 수영을 다니겠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변덕스러운 태도 변화에 엄마는 까닭을 물었고

친구 때문이라 하자 그게 엄마는 너무 섭섭하셨나 보다. 갑자기 내 앞에서 울기 시작하는데

어찌할 바 몰랐다.

 

<동생>

9살 때 – 거미줄 놀이 : 어렸을 때 동생이랑 자주 했던 놀이다. 아직까지도 재밌게 느껴져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자주 하고 재밌어했다. 마치 미션 임파서블처럼 방 안을 실로 덮어서 그

사이사이를 몸이 닿지 않게 넘어 다니는 놀이였다. 얼마 안 되는 동생과의 즐거운 기억들 중

하나이다.

 

<친구 1>

16살 때 – 너무 못됐던 때 : 친구가 학교에 전학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철도 없었고 일종의

텃세였던지 초반에 딱히 잘 대해주지 않았다. 왜 굳이 그렇게 쌀쌀맞게 대해야 했는지

아직까지도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후회되는 기억이다.

 

<친구 2>

17살 때 – 오해의 시작 : 17살 때 친구가 내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을 왔다. 이 친구는 나의

성격과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는데 낯가림도 별로 없고 두루두루 많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적극적인 친구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 오해가 생겨서 ‘너를 싫어한다’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친구가 우리 둘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고 있었다. 내 성격이 둔한 탓에

이것도 훨씬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런 사실을 모른 체 사이가 잘 풀린 걸 보면 참

미스터리이다.

 

<친구 3>

15살 때 – 배신당한 날 : 이 친구가 우리 학교로 막 전학 왔을 때는 사실 그리 평탄치만은 못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 작은 학교에서 몇 안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나름 ‘선배’라는 사람들이 이

친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와 친구를 cafeteria에 불러 벽에 몰아세워놓고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협박 아닌 협을 하는데 아니라고 얘기만 꺼내면

말대꾸를 한다고 잘라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학년에 친구가 우리가 하는 대화를 잘못

알아듣고 자기 언니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더 와전되어 이런 일이 생겼고 나로 말하자면 오해한

친구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지만 그 친구는 믿은 사람한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는지 화장실에서 엉엉 울면서 슬퍼했던 기억이 있다.

 

별거 없지만 내 이런 기억들이 내 Eternal Sunshine이다.

 

 

 

 

 

 

'Sessions > DEMA Tal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을 알고 나를알다(知中知我) - 김지나  (0) 2017.06.02
영감 - 허운  (0) 2017.05.31
나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 김은후  (0) 2017.04.07
감정에 솔직하다 - 이후인  (0) 2017.04.04
조잘거림 - 이재림  (0) 2017.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