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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시 여겨지는 것들 - 조승연

DEMA Studio 2018. 7. 11. 21:06

저의 관점 공유 주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여기서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이란 음악, 문학, 영화 같은 예술작품 안에서 마치 공기처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또 물고기에게 물처럼 당연한 존재인 것처럼 여겨지는 어떤 것들입니다. 저는 영화를 공부하면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고민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제 생각을 한번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가수의 음악은 듣기 좋습니다. 신나는 멜로디와 보기 좋은 비주얼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가사도 사람들의 관심을 확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한 가수들의 가사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이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위의 가사에는 가수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남성은 어떠해야 하고 여성은 어떠해야 하고 같은 내용들입니다. 만약 가수의 이러한 생각들을 글로 풀어냈다면 대중에게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내용들이지만, 가사 속 내용은 좋은 멜로디와 비주얼로 비교적 안전하게 포장되어 있습니다. 멜로디와 비주얼은 마치 이 가수의 생각이 더 세련되고, 근사해 보이게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음악에서 가수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예술작품을 거칠게 두 층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예로 들면 멜로디, 비주얼, 가사같이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형태를 표면이라 한다면 음악 속에 내재된 가수의 관점과 생각은 토대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고유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해석하는 방향은 사람들마다 모두 다릅니다.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쌓아온 각자의 경험과 생각들은 각자의 프레임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이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프레임이 있다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세상을 주관적이지 않게 볼 수 없고, 오직 프레임을 통해서만 세상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린 기본적인 판단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창작자들 또한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그들의 관점을 토대로 하여 창작해 나갑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작품 속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로 드러납니다. 위의 노래를 보면 가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녀의 상이 드러납니다. 이 상은 가사 속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여겨집니다. 실제 현실에서 남녀를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에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 노래의 가사를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토대는 우리가 작품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은 영화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영화속에서는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이 더 잘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든 것이 토대로 존재합니다. 이는 주제와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생에게 진상 짓을 하고 있는 손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면, 주제는 아르바이트생의 비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토대는 넓게 보면 현실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을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부터 세세하게는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을 대하는 사소한 행동(비굴한 표정, 굽은 자세 등)도 포함합니다. 아르바이트생의 사소한 행동으로부터 보편적으로 직원이 손님을 대할 때 가능한 행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 하나하나는 언뜻 보면 당연하게 보이지만, 이 또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약속들입니다. 이러한 토대로부터 우린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토대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분명히 토대를 통해서 우린 이 세상을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영화만의 방법으로 토대를 조작해서 현실을 새롭게 구성하기가 가능합니다. 새롭게 재구성된 영화 속 토대는 영상미, 음악, 연기, 대사 같이 설득력을 갖고 있는 영화의 장치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영화의 정치성은 이 숨겨져 있는 토대에서 나옵니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 현실을 재구성했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저도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설명하기 쉽지 않아서 보다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가져왔습니다.




영화 부산행에서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는 남성 캐릭터는 언제나 여성을 보호하는 역할입니다. 한편 임신한 여성 캐릭터는 언제나 보호받는 입장입니다. 우린 영화 속에서 이렇게 당연시 여겨지는 성차별적 이분법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흥미로움, 매력, 몰입도 때문에 가능합니다. 물론 이러한 이분법은 극적효과를 위한 설정일 뿐 성차별적 함의는 담겨 있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자가 그런 함의를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생각과 관점이 작품에 드러납니다. 창작자가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면서 쌓여온 것들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깁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러한 생각들은 재생산되어 살아남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 이미지는 이러한 과정으로 생성되기도 합니다.




다음 예는 국제시장입니다. 한 남성의 일생을 통해 한국현대사를 돌아보는 이 영화 속에 감독은  기성세대를 희생의 아이콘으로 규정하는 토대를 숨겨놓았습니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이렇게 이야기 속에 스며들어 잘 드러나지 않는 영화 속 토대를 들추어냈습니다.




현대사회는 이제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보드리야르는 현시대를 현실로부터 이미지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범람하는 이미지로부터 현실 이미지가 생성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미지 속 표면과 토대를 생각해보면 각각의 이미지에는 내재되어 있는 토대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쏟아지는 이미지들과 그 속에 숨어있는 토대들에 대해 우리가 비판적인 인식을 갖출 수 있는가입니다. 영화속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들은 다시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구성하는 현실 이미지에 영향을 줍니다. 앞서 말한 성차별적 이미지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에게 익숙해집니다. 논설문 형식으로 뚜렷한 주장을 하는 경우에는 명확한 비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술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어 숨어있는 창작자의 생각들은 비판대상을 찾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작품 속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