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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믿습니까 - 김민경

DEMA Studio 2018. 7. 11. 20:04

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쭉 수학, 과학, 공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공부가 정말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요, 공부를 하면서 학문에 대한 무한한 신뢰나 자부심이 솟을 때가 있었습니다. 모든게 딱 맞아 떨어지고 깔끔하고 완벽해보일 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공부를 할수록 그 사이의 빈틈을 보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고등학교 과학이 부정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논리들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교수님들께서 우리가 고등학교 과학에서 그렇게 좋은 점수를 받은게 대단하다고 하실 정도로 (교수님들이 시험 보시면 아마도 지못미…) 말이에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들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회사나 대중이 원하기 때문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실험실에 있는 사람들은 피곤에 절어 기본적인 절차를 생략하기도 했고 실험을 누가 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지금 저에겐 이 모든게 놀라움 없이 받아들여지지만, 과학이 정말 객관적이고 정확하고 절대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처음 받아들이기엔 충격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과학을 공부하면서 주어진 정보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었고, 그 바탕에 깔린 가정이나 조건을 파악해내려고 하는 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사나 광고 등을 볼 때 그런 정보가 자세히 언급되지 않으면 논리적인 자료를 볼 수 있을 때까지는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전공을 공부한 사람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특히 과학은 상식보다는 좀더 전문적인 지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비판적인 사고의 대상이 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는 과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도 과학기술의 산물을 접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물결에 휩쓸리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과학기술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저도 과학기술학을 깊이 아는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책을 바탕으로 설명드립니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라는 책에서 몇 개의 소챕터를 뽑아서 설명하기 때문에 각 문단이 잘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을 테크노사이언스의 네트워크로 생각하기>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의 약자이며 과학기술학으로 번역됩니다. 과학기술학은 사회나 문화가 과학기술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양상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아닌 것(비인간)을 학문의 대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의 학문과 구별됩니다.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실험실이라는 장소에 자연을 들여와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듭니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은 비인간을 길들여서 세상에 내놓는 인간의 활동이며 이를 통해 인간-인간 또는 인간-비인간 사이의 네트워크를 생성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과학과 기술 모두 비인간을 길들여서 세상에 내놓는다는 공통점을 강조하고 과학기술과 사회의 연결에 주목하며 과학기술이 인간의 활동임을 강조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테크노사이언스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테크노사이언스에게 실험실을 달라>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과학기술자들은 대부분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합니다. 실험실에서는 인간 행위자인 과학자가 비인간 행위자인 기구를 사용해서 비인간 행위자인 자연을 조작하고, 통제하고, 길들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때 사용하는 기구나 대상은 표준화되어있는데, 연구를 하면서 기존의 기구를 쓰기도 하지만 새로운 기구를 발명하기도 합니다. 기구의 발명은 과학의 진보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실험실에서 과학기술자들은 자연을 비틀어서 정상 상태의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자연을 길들임으로써 작은 규모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유용하거나 혁신적인 결과물이 만들어지면 공장, 학교, 보건소 등으로 가면서 우리 사회를 구성합니다.

 

<패러다임>

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조작하고, 이해하는 틀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겸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이 제창한 개념입니다. 과학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학문이며 시기에 따라 정상과학 시기와 과학 혁명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상과학 시기에는 단일 패러다임이 존재하여 이 패러다임과 잘 맞지 않는 사례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무시되거나 이 패러다임 안으로 포섭됩니다. , 사실과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이 패러다임 안으로 수용되어야 합니다. 훌륭한 과학의 기준이 패러다임에 따라 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과학 혁명기는 두 패러다임의 공존으로 이루어집니다. 과거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과학자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과학자 간에 논쟁이 이루어지는데, 패러다임이 다른 까닭에 합리적인 소통이 어렵습니다. 과학은 이렇게 전쟁(과학혁명기)과 평화(정상과학 시기)를 반복하면서 발전합니다.

 

<법칙은 자연에 존재하는가>

 과학에는 수많은 법칙이 있습니다. 과학 시간에 보일의 법칙, 뉴턴의 운동법칙, 질량보존의 법칙, 멘델의 유전법칙 등을 배우고 그에 딸린 공식들을 외우며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법칙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자연에 그 법칙들이 프로그래밍되어있어서 그걸 따르고 있는 것일까요? 예시를 하나 보겠습니다. 16세기 과학자 티코는 행성들이 정말로 태양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행성의 운동을 관측하고 기록했습니다. 티코의 조수였던 케플러는 관측결과를 분석하여 행성이 타원과 비슷한궤도를 따라 운동한다는 것을 알아내었고, “행성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 운동을 한다는 케플러의 법칙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뉴턴은 태양과 행성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있다면 행성이 타원의 궤도를 돈다는 것을 증명하여 뉴턴의 중력 법칙을 만들었습니다.

 케플러 법칙은 현상을 근사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뉴턴의 법칙은 이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실제 세상에 대한 근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복잡한 자연의 여러 조건들 중에서 특정 조건에만 초점을 맞춘 뒤에 과학법칙들을 얻어내기 때문에 많은 과학 법칙들이 수학적 형태를 띠게 됩니다. 이는 자연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있기 때문에 아니라, 자연에서 수학적 관계를 만족하는 특정 변수들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들 간의 관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 과학은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네트워크로 읽는 세상>

 심장마비 환자 100명 중에 97.5명이 사망합니다라는 명제는 사실일까요?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97.5%의 확률로 사망하게 될까요? 스웨덴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응급심폐소생술 교육을 받는데, 심장마비 환자의 소생률이 14%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어떤 네트워크에 있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집니다. 고층 아파트에서는 엘레베이터를 한참 기다려야 하고, 엘레베이터에 구급침대가 들어가지 않아서 시간이 더 지연됩니다. 그래서 도시의 아파트 1층에 살 경우에는 4%의 확률로 생존하지만, 10층 이상에 살 경우에는 생존율이 1%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결과물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항상 어떠한 결과나 효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물이 생성된 조건과 현재 상황의 조건을 생각해보고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과 과학기술학>

 테크노사이언스는 이전에 있던 자산들을 이용해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며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입니다. 서양에서 탄생한 자연과학은, 여러 논쟁과 갈등을 실제로 겪으며 성장했지만 우리는 완성된 과학을 수입하여 배우면서 과학을 훨씬 더 진리, 사실, 객관성, 보편성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의 과학은 완성된 진리이자 힘으로 인식되고 기술 발전을 추진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지 못하는 과학은 가치가 없는 과학으로 치부됩니다. 과학의 도구화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의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과학이 자연의 절대적 진리를 드러내는 작업이 아니라 이성과 육체를 가진 사람이 자연에 대한 최선의 이해를 얻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책의 인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과학기술학을 알게 되고 과학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도 결국엔 인간의 손을 타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과학기술에 압도되거나 이에 끌려가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