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김은후
안녕하세요 디마스튜디오 김은후 eyes입니다. 저는 ‘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또한 이런 말을 자주 하는 것은 비단 저만의 경우가 아닌데요, 실례로,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 1순위가 ‘집에 가고 싶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를 포함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항상 집을 그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집에 의미에 대해 고찰해보기에 앞서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집에 대한 범위 좁히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다루고자 하는 집은 house가 아닌 home의 개념으로서 밖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떠한 형태의 위안이 존재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사람들에게 집은 꼭 돌아가고픈 공간이 아닌, 단순히 외부적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는 shelter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곧 여기서의 집은, 물리적 기능의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정신적으로 거주자와 연결되어 있는 집을 의미합니다.
저는 제가 집과 어떤 지점에서 정신적 유대감을 느끼는지 살펴보기 위해 제 고향 광주에 있는 집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인간의 지각 능력이 처음 ‘자극’을 인지하는 감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하여 오감을 사용하여 집과 만나보았습니다.
먼저 집의 생김새를 가장 쉽사리 인식하게 해주는 시각입니다. 저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아, 집에 왔구나’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단순히 집 자체만이 아니라 집을 둘러싼 환경 또한 집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집에서는 가족들의 추억이 깃든 사진, 할머니의 그림 등 저마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물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을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커튼을 열어젖히면 밝은 빛이 온 방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듭니다.
또한 집에서는 다양한 느낌을 주는 요소들을 만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저희 집 강아지들의 털을 만졌을 때 보드라운 느낌, 이불에 폭 파묻혀 있을 때 드는 폭신한 느낌이 있어요. 또한 저희 집 바닥에는 제가 다림질하다가 바닥을 데워먹은 부분에 눌린 자국이 생겼는데요, 만지면 그 부분만 오돌토돌한 느낌이 듭니다. 이처럼 집은 살아가는 사람과 함께 다양하고 오래된 흔적을 남기며 이것이 촉각으로도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낯선 집에 가서 ‘낯선 냄새’를 맡은 적이 있으신가요? 분명 한번쯤은 그러한 냄새를 맡은 기억이 있으실 텐데요, 우리는 자신의 집 냄새에는 익숙하더라도 다른 집에서 나는 냄새는 쉽게 감지합니다. 하지만 한번쯤 ‘우리집’에서 풍기는 냄새 또한 맡으려 해보세요. 엄마 요리 냄새, 오래된 소파에서 나는 냄새, 베개에 코를 파묻었을 때 나는 할머니 냄새…이처럼 각각의 집은 고유의 냄새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집에서는 다양한 소리가 납니다. 저희 집 같은 경우에는 부엌에서 엄마께서 요리하시는 소리, 아빠께서 잔디 깎으시는 소리, 동생의 기침소리 등이 나는데요, 이러한 소리들은 집 안에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고 우리를 안심시켜
줍니다.
가끔 tv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다 보면 오랜만에 집밥을 먹고 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오랜 여행 후에 ‘엄마밥’을 그리워하곤 합니다. 이는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집의 식사시간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고 그것이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식탁에 앉아 우리는 가족들과 평범한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특별한 이야기들을 평범하게 나눕니다. 소박한 밥이지만 함께 모여 이야기와 정을 나누는 가족의 기억이 밥을 더욱 맛있게 합니다.
이렇듯 많은 부분에서 우리와 감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집. 집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기에 이렇게 평범한 것들을 지속적인 그리움의 대상으로 변모시키는 것일까요? 저의 관점에서 집은 나만의 공간이자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곳입니다. 집에서는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며 이는 집을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대상’ 으로서 기능하게까지 합니다. 우리는 집에서 타인과 물리적,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편안한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편안한 고립 상태에서 우리는 모든 긴장을 풀게 됩니다.
또한 집은 우리에게 휴식과 위로의 공간이 되어줍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면화들에 맞닥뜨리고 대응해야 하는 빠른 세계에 몸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만은 우리는 따로 적응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의 기분과 생각에 맞추어 집이 변화해 나가지요. 우리는 집 밖에서 항상 이러한 안락의 공간을 그리며 ‘향수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집의 속성은 오직 우리가 장기적으로 생활하는 집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행을 가서 피곤할 때 숙소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한 공간에 정이 붙고 자신만의 요령과 애착이 생긴다면 그 또한 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집은 나와 닮아있는 공간이자 기억 저장소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집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은 물건들이 가득하고, 그것들은 우리의 추억이 쌓이게 합니다. 더불어 집을 통해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성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요, 집이 위치한 환경, 책꽂이의 책 등을 통해 집 주인에 대한 실마리를 찾습니다. 결국 집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과 닮아 있고 이는 집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와 대화하고 추억을 나누는 또 하나의 주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현 시점에서 저의 집에 대한 생각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쌓인 것인데요, 앞으로 더욱 다양한 경험을 한다면 집의 의미가 다시 변화되어 있지 않을까요? 집의 의미는 삶의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소중히 다루어져야 할 집의 의미가 현대 사회에 와서 많이 퇴색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어디사세요?’ 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집은 지역, 형태, 크기에 따라 사람들을 계층화 시키는 기호이자 ‘사회적 호패’가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일반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 때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무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집은 오래 있으면 안 되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바쁘게 일하는 것만이 중요시되면서 집에 오래 머문다는 것은 무능력함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집이라는 존재의 근원적 가치와 의미가 희미해져 가고 집의 의미가 잊혀진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나와 가장 맞닿아 있는 공간이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집’이라는 공간을 대상화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익숙하지만 그리운 나의 공간. 오늘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