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근은 다 버리고 싶은, 속된말로 잠수타버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
시기였다. 머릿속에 있던 수많은 고민들을 동시에 꼬리를 물며 질문하다보니 “
아, 지금 나는 정말 작은 고민이라도 하면 안되겠구나 ! “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루종일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해야하나.
휴식을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이 휴식이라는 또다른 고민이 생긴것이다.
안녕, 카메라야.
때마침 친구가 필름카메라 하나를 선물해 주었다. 전부터 사진찍고 싶은 것도
많고, 말로만 찍고싶다 찍고싶다 라고 이야기는 했었지만 그저 입과 생각으로만
머물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무엇을 담고 싶은 것인지 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다.
우선 필름 카매라 한대 받았으니 찍으러 나갔다.
평소에 사진이라고 하면 순간을 포착하는 것, 내 추억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셔터스피드도 높게, 빠르게 찍어냈는데, 이 카메라…
필름카메라이다보니까 앗 하는 순간 내가 담고자 하는 것들을 놓치는 것이였다.
필름 돌리고, 초점 맞추고 이것저것 조절하다보면 이미 시간은 흘러가고 다
놓치는 것이였다. 아이폰과 dslr카메라로 찍는게 익숙하다보니까 순간을
놓치기도 하고, 찍은 사진 확인도 못하고, 이게 제대로 찍힌건지도 알 수도
없으니까 답답했다. 그래도 이것을 일주일동안 계속 들고다니면서 조금은
사람들이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장 한장 신중해 지기 시작했다.
아이폰카메라와 dslr같은 경우는 수백장을 찍어도 필름걱정이 없었으며
확인함과 동시에 다시 찍을 수 있었지만, 필름 카메라는 그게 아니다보니까
한장이 소중해진 것이다.
정말 찍고 싶은 것들만 찍게되고, 찍고자 하는 대상을 오래 관찰하고 바라보게
되었다. 찍은 사진이 어떻게 나올까 라는 설레임도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작가 낸골딘의 사진이다.
친구들이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을 담은 한장의 사진인데,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반짝반짝 거린다. 나도 저 순간에 들어가 있고 싶을만큼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행복해 보였다. 저 곳에 있지는 않지만 단순히 보는 것 만으로도
나의 경험을 토대로한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낸골딘 사진작가의
사진은 모두 주변 사람들을 담고있다.
낸골딘 사진작가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뉴욕,런던,베를린,파리 등을
배경으로 혼란스러운 성적 정체성과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현장들을 가장
흥미롭게 재현하는 사진작가로 알려져있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게이,레즈비언,여장게이,마약중독자,에이즈환자 등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상징적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사진을 당시
사람들이 처음 보았을 때 사람들은 ‘ 게이들이 대낮에 피크닉을 즐기며 웃을 수
있다니! ‘ 라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낸골딘의 사진의 메세지들은 평등한 사람,
그리고 평등한 사랑이다.
낸골딘 사진작가가 담은 사진들은 낸골딘이라는 사진기를 든 사람과 사진 속
인물들과 맺어진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표정,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담겨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처음보는
사람들이지만 왠지모를 친숙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낸골딘 사진작가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자신이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이자 한 개인의
증거이며 시각적인 일기였다.
대학교 일학년때 좋아하는 작가발표에 낸골딘사진을 가져간적이 있다.
그때 한 친구가 그렇다면 낸골딘작가처럼 내가 찍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주변친구들이 좋았지만 그 친구들을 저렇게 담고 싶은 자신도 그리고 마음도
부족했던것 같아서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생겼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단순히 예쁘고, 멋지게 찍어주는 것이 아닌,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면서
이 사람과, 이 공간과 나의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그 감정들까지 담아내는 사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공간들,
내가 사랑하는 내 하루들, 주변들을 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사진을 통해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까지는 아직
고민해보지는 않았다. 어떻게 휴식할까 하고 시작을 했기 때문에 조금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이런 사진들을 찍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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